[사설]침략전쟁 사죄 안 한 日아베, 세계여론 떠보는 건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3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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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반둥회의)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과거 식민지배와 침략, 위안부를 동원한 인권범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 대신 ‘침략, 무력행사에 의해 타국의 영토 보전과 정치적 독립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반둥회의 원칙을 언급하고 “일본은 이전 전쟁의 깊은 반성과 함께 어떤 때라도 (반둥회의 원칙을) 지켜나가는 국가가 될 것임을 맹세했다”고 말했을 뿐이다.

일본과 전쟁을 한 것이 아니라 침략과 식민지배로 고통받은 한국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다. 전쟁에 나선 것을 반성하는지, 패배한 것을 반성하는 건지도 알 수 없다. 외교부는 “무라야마 담화 등 역대 내각의 담화와 역사인식을 계승한다고 했음에도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한 사죄와 반성’이라는 핵심적 표현을 누락한 것은 깊은 유감”이라고 했으나 한국 외교가 ‘유감 표명’밖에 할 수 없는 점도 유감스럽다. 이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아베와의 정상회담에서 “역사 문제는 양국 관계에서 중요한 정치적 기초의 원칙 문제”라고 못 박고 “일본이 아시아 주변국을 진지하게 대하고 역사를 바로 본다는 긍정적인 소식이 나오기를 바란다”고 분명히 밝혔다.

60년 전 처음 개최된 반둥회의 참가국들은 제국주의의 침략과 수탈에 시달린 역사가 있다. 이 자리에서 아베가 과연 일본이 저지른 과거의 잘못을 인정할지 관심사였으나 결국 두루뭉술하게 넘기고 말았다. 이대로라면 29일 미국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과 8월 제2차 세계대전 전후(戰後) 70주년 담화 역시 진전된 내용이 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과 일본에서도 비난하는 소리가 높아지는데도 어제 일본 여야 의원 100여 명이 야스쿠니신사의 춘계 예대제에 집단 참석한 것은 우익 세력이 세계의 여론에도 귀를 막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스트리아의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전후 청산하지 못한 사무라이 계급의 잔재가 팽창적 군국주의의 원인”이라며 이런 군사적 사회구조의 잔재가 격세유전으로 나타난다고 예견한 바 있다. 과거사를 직시하지 않는 아베가 이끌 일본의 미래가 걱정스러운 것도 이 때문이다. 극단적 우경화로 치닫는 일본이 국제적, 군사적 역할을 모색할 때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경고까지 나온다. 지금은 아베 개인이 아니라 일본이라는 나라의 양심과 국격이 역사의 시험대에 올라 있다는 사실을 양심적 일본 국민은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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