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고가 끊기면 밥줄도 끊겨”… 만리동 봉제공장의 한숨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9일 03시 00분


코멘트

고가도로 공원화땐 우회로 정체… 동대문 상가에 납품 2500개 업체
배송시간 못맞춰 거래 끊길 우려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한 봉제공장. 산더미처럼 쌓인 원단 찌꺼기 사이로 직원 4명이 고개를 들 새도 없이 재봉틀을 돌리고 있었다. 다리미가 뿜는 수증기를 타고 퀴퀴한 먼지 냄새가 가득했다. 사장 A 씨는 “먹고살려니 하루 14시간 일은 기본”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20m²도 안 되는 좁은 공간에서 꼬깃꼬깃 구겨진 채 일하는 공장에는 ‘전태일 시대’의 풍경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마포구와 중구를 잇는 만리동 고개에는 이런 ‘간판 없는 봉제공장’이 2000∼2500곳에 이른다.

요즘 만리동 고개 공장들의 가장 큰 근심은 줄어드는 일감이 아니다. 서울시가 추진 중인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사업이다. 앞서 박원순 시장은 지난해 10월 낡고 위험한(안전 D등급) 서울역 고가를 다시 짓는 대신 380억 원을 들여 2017년까지 공원으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고갯길 봉제공장들이 걱정하는 건 ‘교통문제’다. 봉제공장의 일과는 시간과의 전쟁이다. 매일 아침 동대문 패션상가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원단을 가져와 옷을 만들고 당일 오후 9시 전후까지 늦지 않게 납품해야 한다. 동대문을 오갈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이 서울역 고가도로다. 이곳을 이용하면 동대문까지 10∼20분에 갈 수 있다. 김성진 태성상사 대표(55)는 “서울시가 제시한 우회로(중림동∼염천교 교차로 방면)는 퇴근길 정체가 매우 심해 납품시간 지키기가 어렵다”며 “시간에 쫓겨 옷을 만들면 질이 떨어지고 배송까지 늦어지면 거래처가 끊길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이 때문에 사양길에 접어든 봉제업계의 수명 단축을 서울시가 부채질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봉제공장들은 대체 도로 건설을 요구하고 있지만 서울시는 ‘무대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당초 ‘서울역 북부역세권’ 개발을 통해 약 330m의 대체 교량 건설이 추진됐지만 올해 초 민간사업자가 철수하면서 답보 상태다. 서울시 도시안전본부 관계자는 “코레일이 소유하고 있는 서울역 북편에 서울시가 직접 교량을 건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봉제업자들의 피해가 불가피하지만 최대한 가까운 우회로를 안내하는 게 현재로선 최선의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이철호 기자 irontiger@donga.com
#서울역#봉제공장#만리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