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회현리 패총 주인은 日거상 유력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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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김해시 회현리 패총에서 출토된 3호 옹관(위 사진). 이 옹관에서 출토된 동사(아래 사진)7점의 날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닳아 있는 사실이 최근 발견됐다. 국립김해박물관 제공
경남 김해시 회현리 패총에서 출토된 3호 옹관(위 사진). 이 옹관에서 출토된 동사(아래 사진)7점의 날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닳아 있는 사실이 최근 발견됐다. 국립김해박물관 제공
경남 김해시 조개무지(貝塚·패총)에 3세기 말 일본인 거상(巨商)이 묻혔다. 한반도와 일본 열도를 오가며 중개 무역에 종사한 이 사람이 세상을 떠나자 지인들은 평소 사용하던 필기도구를 한꺼번에 무덤에 부장했다.

국립김해박물관이 최근 발표한 ‘김해 회현리 패총’ 학술조사 보고서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재구성한 옹관 주인공의 모습이다. 김해박물관은 일제강점기 발굴된 회현리 패총 자료를 재조사한 결과 D지구 3호 옹관에서 발견된 7점의 동사(銅사)가 각기 다른 방향에서 갈린 흔적을 최근 발견했다. 한 무덤에서 7점의 동사가 한꺼번에 출토된 것은 회현리 패총이 유일하다.

동사란 끌이나 커터처럼 앞부분을 간 청동기로, 학계에서는 용도를 놓고 지우개와 조각칼, 소형 창 등으로 의견이 엇갈린다. 종이가 귀한 옛날에는 나무로 된 목간(木簡)에 문자를 새겼기 때문에 마치 지우개처럼 잘못 쓴 글자를 동사로 지웠을 것이라는 견해에 힘이 실리고 있다. 진시황릉 병마용에서 출토된 문인상의 허리춤에 동사와 유사한 도구가 달려 있는 것도 이런 견해를 뒷받침한다.

그런데 이번 재조사 과정에서 동사 여러 개의 끝 부분이 왼쪽 혹은 오른쪽만 집중적으로 닳아 있는 사실이 새로 밝혀졌다. 보고서를 작성한 이양수 김해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동사가 마연된 위치와 각도가 모두 다른 걸 감안할 때 각각 오른손잡이, 왼손잡이인 사람들이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자신이 쓰던 동사를 무덤에 넣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고대 목간은 책은 물론이고 운송하는 물건의 꼬리표 역할도 했기 때문에 동사를 묻은 사람들은 학자나 상인이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을 장례식에 한꺼번에 불러들인 옹관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우선 이 옹관이 한반도가 아닌 고대 일본 규슈 지방의 옹관과 같은 종류라는 점에서 일본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옹관이 있던 장소가 2000년 전에는 바다와 연접한 이른바 명당이었고 옹관의 부장품이 어느 정도 격을 갖추고 있음을 고려하면 상당한 사회적 지위를 누렸던 인물로 보인다.

학계는 경남 김해와 고령 일대가 고대 한반도의 주요 철광석 산지였고, 왜가 이를 수입한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철을 매개로 중개 무역에 종사한 양측 상인들이 상대국에 무리를 이뤄 거주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결국 옹관 주인은 철을 중개한 일본인 거상으로 한반도의 일본인 거주민들 사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해박물관은 조사를 마친 옹관과 출토 유물들을 지난달 31일부터 대외교류 상설전시실에서 선보이고 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김해#회현리#패총#조개무지#일본인#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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