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달라도… 아들 잃은 부모 눈물 색깔은 똑같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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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저격수 총에 아들 잃고… 복수대신 용서 택한 이스라엘 모친
뉴욕서 강연… 참석자들 기립박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서로 미워하려면 그 이유를 2000가지 넘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영원한 피해자가 됩니다. 용서와 화해 없이는 모두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습니다.”

2일 오후 8시 미국 뉴욕 맨해튼 36번가에 있는 ‘시너지교육센터’에선 팔레스타인 저격수의 총에 아들을 잃은 이스라엘 국적의 로비 다멜린 씨(72·사진) 초청 강연이 열렸다. 복수 대신 ‘용서의 삶’을 택한 것은 그가 이날 강단에 선 이유다. 그는 같은 처지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유가족 모임인 ‘PCFF(Parents Circle-Families Forum)’의 대변인 겸 홍보국장을 맡고 있다. 1995년 창립된 PCFF에는 현재 총 600여 유가족이 참여하고 있다. PCFF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역사적 화해 △자유로운 협상에 기반한 평화 조약 체결 등을 촉구하는 활동을 한다.

다멜린 씨가 군 복무 중이던 아들(당시 28세)의 사망 비보를 들은 건 2002년 3월. 그는 슬픔 속에서도 “내 아들의 이름으로 복수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또 그 마음을 이스라엘 군 당국에 전달했다. 그는 “아들의 시신을 묘지에 묻는데 그곳에서 수많은 군인들의 묘비를 봤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희생인가(For What?)’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로부터 몇 개월 뒤 지인의 소개로 PCFF 모임에 나갔다가 이스라엘군 총에 아들을 잃은 팔레스타인 엄마를 만났다.

“그 엄마도 나와 똑같은 슬픔과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인이든, 팔레스타인인이든, 흑인이든, 백인이든, 자식을 잃은 부모가 밤마다 베개에 흘리는 눈물의 색깔은 똑같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됐습니다. 그날부터 내 인생도 송두리째 바뀌었습니다.”

작은 홍보대행사를 운영하던 다멜린 씨는 사무실을 닫고 PCFF 활동에 전념했다. 그는 “(PCFF 활동을 하며) 가장 큰 어려움은 양측 유가족이 처음엔 아무 말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그런 그들이 모임에 나와 자신의 아픔을 말하고 상대의 눈물을 보면서 ‘화해와 용서의 길’에 동참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날 참석자들에게 “(미국 시민인) 여러분도 ‘팔레스타인 편이냐, 이스라엘 편이냐’가 아니라 이 분쟁을 끝내고 역사적 화해와 평화의 길을 열 수 있는 ‘해결책을 찾는 편’에 서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특히 “여자들이, 특히 엄마들이 연대할 때 상상할 수 없는 힘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이날 강연회의 사회를 본 시너지교육센터의 피터 그리피스 대표는 행사를 마치며 “다멜린 씨, 저는 당신을 정말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며 울먹였고, 참석자 전원은 일어나서 눈물의 기립 박수를 보냈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아들#이스라엘#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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