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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들 헌 장갑 눈에 밟혀”…‘착한 창업’ 길 나선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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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들 헌 장갑 눈에 밟혀”…‘착한 창업’ 길 나선 청년들

박성민기자 입력 2015-02-09 03:00수정 2015-02-09 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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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젊음의 도전]공익에 눈돌린 ‘사회적 기업’
대기업이나 공기업 취업 혹은 공무원시험 합격이 ‘꿈’이라고 말하는 젊은이가 많은 시대다. 무엇보다도 통장에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의 가치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내 주머니’보다 이웃과 사회의 공익적 가치에 눈을 돌린 젊은이들이 있다. 친구들이 자기소개서를 쓰는 동안 이들은 그만큼의 간절함으로 사업계획서를 쓴다. 직원을 고용해 창업했지만 ‘직원들 4대 보험은 줄 수 있을지, 월급은 제때 줄 수 있을까’ 늘 걱정이다. 그래도 이들의 얼굴엔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그토록 바라던,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았기 때문이다.

“소방관의 헌신 기억해주세요” ‘파이어마커스’ 이규동 대표와 박지원, 박용학 씨(왼쪽부터)가 지난달 27일 폐소방호스를 재활용해 만든 가방을 선보이고 있다. 이 대표는 “아무리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소방호스의 그을음이 우리 가방의 매력”이라며 활짝 웃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 공익가치 앞세운 청년 창업 붐

지난해 호서대 소방학과를 졸업한 이규동 씨(27). 그는 한때 서울 노량진에서 소방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어린 시절 우상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소방관이 되는 게 이 씨의 오랜 꿈이었다. 하지만 이 씨는 2년 전 꿈을 접고 사업가로 변신했다. 그는 현재 낡은 소방호스를 재활용해 업사이클링(재활용품을 부가가치 높은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생산방식) 가방을 만드는 기업 ‘파이어 마커스(Fire Markers)’의 대표다.

평범한 고시생이 최고경영자(CEO)의 길을 걷게 만든 건 아버지의 낡은 소방장갑이었다.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이 부족해 사비를 들여 장갑을 사는 소방관들의 현실이 자꾸 눈에 밟혔다. 소방관의 처우 개선을 고민하던 이 씨는 직접 회사를 차려 이들을 돕기로 결심했다. ‘소방의 흔적’이라는 회사명에는 소방관의 헌신을 기억하자는 뜻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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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도 많았다. 창립 멤버 모두 가방 디자인에는 전문성이 없었다. 그나마 평소 옷 수선을 즐겨하던 후배 박지원 씨(26)가 초안을 그렸다. 하지만 샘플을 만들어주는 곳이 없었다. 공장에선 샘플 하나 만드는 데 60만 원을 달라고 했다. 보다 못한 이 씨의 아버지가 직접 나섰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라”며 창업을 극구 말리던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직접 재봉틀을 잡았다.

어렵사리 탄생한 첫 샘플은 여러 공모전에서 호평을 받았다. 샘플로 만든 동전지갑 40개를 완판하며 자신감도 얻었다. 사업 취지에 공감한 한 공장 대표가 제품을 생산하기로 하면서 이달 말 가방 네 가지를 출시하게 됐다. 이 씨는 “수익의 일정 부분은 소방관들의 처우 개선에 쓸 생각이다. 노후 장비 교체가 시급한 지방의 작은 소방서부터 돕고 싶다”고 말했다.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는 젊은 세대의 발걸음이 사회적 기업으로 모이고 있다. 올해 1월까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인증한 사회적 기업은 1251곳. 2013년 856곳에서 2년 사이 50% 가까이 늘었다. 올해 정부 지원 예산만 1465억 원에 달한다. 그중에는 중년층의 ‘인생 2모작 창업’도 있지만 신생 기업의 상당수는 이 씨 또래의 젊은 기업가들이 이끌고 있다.

시민과 함께하는 아동학대 방지 캠페인 힐링브러쉬 김요셉 대표가 지난해 12월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한 아동학대 방지 캠페인. 지나가는 시민이 빔 프로젝터 앞에 서면 학대 부모를 막는 ‘슈퍼맨’처럼 보이도록 연출했다. 힐링브러쉬 제공
○ 기성세대와 다른 ‘성공 방정식’

“저는 그동안 받고만 살아왔어요. 이젠 돌려주면서 살고 싶어요.” 최근 쪽방촌 주민 자립 사업 ‘꽃 피우다’를 시작한 ‘에덴그리닝’ 양순모 대표(29)가 밝힌 창업 이유다. 이달 말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는 양 씨는 고시 준비생이었다. 하지만 필리핀 오지 봉사활동이 전환점이 됐다. 남을 돕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깨달았다. 서울 지하철 충정로역 부근에 마련한 ‘꽃 피우다’ 1호점에서는 쪽방촌 주민 4명이 원예와 가게 운영을 배우고 있다. 취약계층의 자립이라는 설립 취지에 맞게 탈북 청년을 직원으로 고용하기도 했다.

‘탈북자가 쪽방촌 주민을 돕는다.’ 김지한 사회적기업활성화포럼 기획위원장은 “양 씨 세대가 할 수 있는 순수한 발상이다”라고 말했다. 1980년대 이후 태어난 젊은 세대들이 탈북자, 다문화가정, 노인 빈곤층 등 다양한 소외계층과 마주할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다. 청소년기에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캠퍼스에서는 세계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사회 양극화 문제를 더 고민하게 된 것도 큰 이유다. 김 위원장은 “경제 위기를 겪은 젊은이들이 대안 경제, 사회적 경제에 대한 고민을 다시 시작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소통을 중시하는 수평적 구조도 젊은 세대가 사회적 기업에 끌리는 이유다. 공익광고대행사 ‘힐링브러쉬’의 김요셉 대표(32)는 “선정적인 마케팅만 강조하는 일반 광고대행사의 작업 방식과 폐쇄적인 조직문화가 싫어 직접 회사를 차렸다”고 말했다. 힐링브러쉬가 최근 서울 광화문광장 등에서 진행한 아동학대방지캠페인은 입소문을 타고 20개 언어로 번역돼 세계 48개국으로 퍼져 나갔다.

○ “은둔형 외톨이 10만 명 세상 속으로”

공익적 가치를 추구하는 젊은 세대의 고민은 국경을 넘나들기도 한다. 최근 ‘K2인터내셔널 코리아’는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K2인터내셔널’은 일본의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와 니트(NEET·구직 노력을 하지 않는 실업계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89년 설립된 사회적 기업이다. 호주 뉴질랜드 등지에서 해마다 1000여 명의 자립을 돕고 있다.

2012년부터 한국지부를 이끌어 온 고보리 모토무 씨(32)도 15년 전까지 은둔형 외톨이였다. 고보리 씨는 “좌절한 청년들에게는 ‘장면 전환’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시 출발할 수 있는 새로운 환경을 사회가 만들어줘야 한다는 뜻이다. 지난달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국내 니트족은 163만 명. 히키코모리는 10만∼20만 명으로 추산된다. 고보리 씨는 “한국 정부가 이 숫자에 너무 둔감하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올해 한국 청년 100명의 자립을 돕는 게 목표다. 청년 자립의 문제는 지역경제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고보리 씨는 5월부터 정릉시장 상인들과 더불어 ‘시장학교’를 열 계획이다. 상인들은 교육생에게 장사 노하우를 가르치고, 청년들은 침체된 재래시장의 부활을 돕는 일석이조 프로젝트다.

사회적 기업은 정부와 민간기업이 외면하는 사각지대를 보듬는다. 사회적 기업 선진국인 독일은 협동조합 형태의 사회적 기업이 9000여 개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독일이 세계 금융위기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이유를 풀뿌리 사회적 기업의 힘에서 찾는다. 사회적 기업은 이미 각광받는 직업 가운데 하나다. 미국에서 교육 격차 해소를 위해 설립된 비영리단체 ‘티치포아메리카’는 대학생들의 취업 희망 10위에 꾸준히 꼽히고 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공익#사회적 기업#청년 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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