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의료지식을 만화로? 벤처 훈풍 다시 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4일 17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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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병원 복도에서 30분 기다렸지만 의사로부터 상담 받는 시간은 2~3분 남짓. 일부 환자들은 상담시간이 짧다며 불평을 터뜨린다. 한 시간에 30명씩 예약된 환자들 때문에 더 자세한 설명을 할 수 없는 의사 역시 고역이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외과 전문의 과정까지 마친 정희두 헬스웨이브 대표(44)가 숱하게 본 광경이다. 정 대표는 여기서 착안해 2009년 벤처기업 ‘헬스웨이브’를 차렸다. 질병 정보와 수술 방법, 부작용 등 환자가 이해하기 어렵고 복잡한 의료 정보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정보기술(IT) 기업이다. 애니메이션은 ‘헬스브리즈’라는 애플리케이션으로 환자의 스마트폰에 전송된다.

정 대표는 타깃 시장을 미국으로 삼았다. 비용은 중소기업청의 ‘민간투자주도형 기술사업화 지원(TIPs)’ 프로그램에서 조달했다. 민간이 벤처기업에 투자하면 정부가 그 액수만큼 추가 투자를 해주는 식이다. 10억 원을 투자받은 정 대표는 현재 미국 존스홉킨스대를 비롯해 일본, 싱가포르, 인도 등의 의료진과 시범사업을 하고 있다.

벤처 훈풍이 다시 한국 경제에 스며들고 있다. IT에 치중돼 있던 벤처투자가 문화콘텐츠, 생명공학 등 한국경제의 차세대 동력으로 확산되고 있다. 대기업, 제조업 중심의 성장이 주춤한 상황이라 벤처기업에 거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4일 기획재정부와 중기청에 따르면 벤처기업 수는 지난달 13일 처음으로 3만개를 넘어선 뒤 4일 기준 3만82개로 집계됐다. 벤처기업이 태동한 1998년 이후 17년만이다. 벤처기업은 벤처육성특별법에 따라 기술신용보증기금 등 벤처확인기관으로부터 확인받은 회사다.

벤처캐피털사와 정부가 지난해 벤처 기업에 투자한 금액은 1조6393억 원으로 전년(1조3845억 원)보다 18.4% 늘었다. 신규 벤처투자펀드도 2조5382억 원으로 전년(1조5979억 원)보다 62.0% 증가했다.

문화콘텐츠, 생명공학 분야의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2013년 투자액이 2856억 원이었던 문화콘텐츠 분야는 지난해 4481억 원(56.8% 상승)으로 늘면서 처음으로 IT를 제치고 최대 벤처투자 분야로 떠올랐다. 같은 기간 생명공학 분야는 투자 액수에서 제조업을 제치고 3위로 올라섰다.

이런 기류를 타고 폐업위기로 내몰렸던 애니메이션 제작사 ‘동우에이엔이’도 부활했다. 뉴 아기공룡 둘리, 올림포스 가디언 등을 제작했지만 자금난을 겪던 이 회사는 지난해 정부의 회생컨설팅 지원을 받고 재기에 성공했다. 동우는 헐크, 스파이더맨 등 세계적인 작품 제작에 참여해 콘텐츠 제작 능력을 더욱 키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벤처기업 육성을 위해 지금보다 더 과감한 규제완화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고부가가치 산업 분야에서도 한국의 경쟁 상대로 떠오른 중국의 경우 지난해 유입된 벤처자금은 155억 달러(17조 500억)로 한국의 12배에 이른다.

이민화 KAIST 교수(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는 “현재 벤처 인증제도는 연구개발만 보는 게 아니라 재무재표를 중시하기 때문에 신생 회사보다는 오래된 기업이 유리해 당초 취지에 위배되는 측면이다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투자자들은 자금 회수시장이 있어야 벤처에 투자하는데 코스닥 활성화가 부진한 점에 대해서도 정부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김준일기자 ji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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