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저 대단한 LSO의 좌충우돌 세계순회 100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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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오케스트라/가레스 데이비스 지음/장호연 옮김/324쪽·1만8000원/아트북스

2012년 일본 공연 중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모습. 아래 사진은 1912년 북미투어 공연 중 미국 캔자스 주 위치토에서 기념 촬영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단원들. 아트북스 제공
2012년 일본 공연 중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모습. 아래 사진은 1912년 북미투어 공연 중 미국 캔자스 주 위치토에서 기념 촬영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단원들. 아트북스 제공
수십 명에서 많게는 100명 이상이 앙상블을 이루는 오케스트라는 그 존재 자체가 기적이다. 하지만 오케스트라의 순회 연주(투어)는 때로 그 이상의 기적이다. 이국에서 연주자가 앓거나 사라지기도 하며, 적대적인 비평가들의 제물도 되면서 수많은 변수에 적응해야 한다.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LSO)는 런던의 ‘5대’ 오케스트라 중에서도 첫손가락에 꼽힌다. 1904년 창립된 이 악단이 초기에 확고한 명성을 확립한 데는 1912년 가진 미국-캐나다 투어가 큰 역할을 했다. 이 책은 이 악단 수석 플루티스트가 쓴 한 세기 전과 오늘날의 순회 연주 기록이다. 옛 연주자들의 일기를 정리한 기록 사이사이 저자 데이비스 자신이 경험해온 전 세계 투어의 스케치가 교차한다.

흥행사 하워드 퓨가 처음부터 LSO를 고른 것은 아니었다. 그는 1889∼1893년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맡았던 독일 지휘 거장 아르투르 니키슈를 미국 청중들이 엄청나게 그리워한다는 사실에 착안했다. ‘니키슈를 다시 만나는’ 순회 연주를 위해 니키슈 자신이 선택한 악단이 LSO였다. 악단 대표는 민활하게 움직여 영국 왕실의 후원을 이끌어냈고 투어는 양국 관계의 증진을 상징하는 행사가 되었다.

자칫 이 계획은 재앙이 될 뻔했다. 악단이 미국으로 출항하는 날은 타이타닉호의 첫 항해 예정일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선사의 다른 배가 군함과 충돌해 수많은 인력이 동원되면서 타이타닉호의 출항이 연기돼 다른 배를 타고 갔다.

반가운 지휘자의 귀환이었지만 영국의 악단을 보는 미국인들의 눈길은 곱지 않았다. 니키슈가 지휘자로 재직했던 보스턴의 신문은 ‘니키슈 또다시 시적 아름다움을 보여주다/런던 오케스트라의 열악한 수준이 고스란히 드러나다’라는 제목을 달았다. 연주가 이어지면서 분위기는 악단에도 우호적으로 돌아섰다. 처음 싸늘했던 뉴욕타임스는 대륙을 돌고 다시 돌아와 가진 연주에 대해 “음악 애호가들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즐거운 추억으로 남을 것”이라고 썼다.

출항에서 귀환까지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단원 한 사람이 죽고 한 사람은 부상으로 병원에만 누워 있다 돌아왔다. 한 세기 전 음악가들의 인간적 면모도 드러난다. 지루한 흔들림 끝에 역에 기차가 설 때마다 가장 먼저 뛰어가 매점 ‘약탈’에 나선 사람이 지휘자 니키슈였다.

블로그를 통해 이미 전 세계에 팬을 확보한 저자 데이비스의 필력은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를 제공한다. 한 세기 전의 순회 연주에 오늘날의 투어 장면들을 교차시키면서, 미국 풍자작가 빌 브라이슨을 연상시키는 요설(饒舌)이 장마다 약속했다는 듯이 곁들여진다. “왼손을 위한 협주곡을 위해 조율된 피아노는 양손 앙코르 연주 때도 소리가 썩 괜찮았다.” “게르기예프(LSO 수석지휘자)는 비올라만 혼자 약하게, 생명유지 장치를 단 것처럼 연주하라고 지시했다. 불쌍한 비올라.” 음악 팬들이라면 누구나 궁금해할 비밀도 공개한다. “손을 파르르 떠는 게르기예프의 지휘를 어떻게 따라가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사실 우리가 보는 것은 그의 눈이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세계 수준의 악단들은 투어를 통해 실력을 확인받고 국가 간의 유대를 증진한다. 마침 서울시립교향악단이 4월로 예정한 북미투어 예산이 전액 삭감돼 실현이 불투명해졌다는 얘기가 들린다. 미국의 지인들은 이미 표를 사놓고 기다리고 있단다. 어떤 결말이 찾아올 것인가.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길 위의 오케스트라#가레스 데이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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