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늑대가 필요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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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인 미국 옐로스톤에서는 나무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학자들이 살아남은 활엽수를 조사한 결과 모두 수령 70년이 넘었다는 공통점을 알아냈다. 1920년대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때는 미국 정부가 ‘늑대가 인간과 가축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늑대 10만여 마리를 사살한 시기였다. 늑대가 사라진 생태계에서 초식동물인 엘크가 평화롭게 살았다. 하지만 최종 포식자가 사라지자 초식동물이 숲을 황폐화시킨 것이다. 급기야 환경 당국은 1995년 캐나다산 회색 늑대 31마리를 들여와 옐로스톤에 풀어놓았다. 죽음의 공포를 느낀 초식동물은 개체수가 줄고, 신기하게도 숲은 다시 살아났다.

▷세계적으로 늑대가 멸종위기에 내몰린 데는 서식지 감소는 물론이고 사냥도 큰 요인이었다. 영국은 한때 늑대가 너무 많아 박멸 대책을 세웠다. 프랑스에서는 늑대 가죽을 세금으로 내기도 했다. 서식지가 줄자 민가로 내려오는 늑대를 사람들은 위협으로 느꼈다. 일제강점기 우리도 늑대를 없애는 해수구제(害獸驅除·해로운 짐승 제거) 사업을 벌였다. 광복 이후 쥐잡기 운동은 치명타였다. 늑대가 쥐약을 먹고 죽은 쥐를 먹는 바람에 2차 중독이 됐던 것이다.

▷한국에서 야생 늑대가 마지막으로 포획된 시기는 1980년 경북 문경에서였다. 이후 늑대가 발견되지 않았다. 마지막 개체가 발견된 후 50년간 보고되지 않은 동물은 멸종된 걸로 본다. 한국에서 늑대의 ‘공식 멸종’이 얼마 남지 않은 셈이다. 그동안 반달가슴곰, 산양, 여우 등 멸종위기 동물의 야생 복원 사업을 벌여 온 환경부가 마침내 한국 늑대의 야생 복원을 추진키로 했다.

▷늑대를 야생에 불러들이려는 건 옐로스톤과 같은 생태계 복원 효과를 노려서다. 그러나 고민도 없지 않다. 지리산에 방사된 반달가슴곰도 때때로 등산객 앞이나 민가에 나타나 사람을 위협한다. 그나마 곰은 혼자 다녀 덜 위협적일 뿐이다. 무리를 지어 다니는 늑대는 등산객에게 위험할 수 있다. 그래도 우리 강산에 늑대가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늑대#멸종위기#생태계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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