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시장’ 윤제균 감독 “진보든 보수든 부모라면…내가 비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9일 14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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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동아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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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제시장’이 1000만 돌파 초읽기에 들어갔다. 8일까지 855만 명이 든 이 영화는 이르면 다음 주 중 1000만 관객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국제시장’의 1000만 관객이 확실시됨에 따라 윤제균 감독(46)은 ‘해운대’(2009년·1145만 명)와 함께 최초로 1000만 영화 두 편을 낸, ‘쌍 천만’ 감독 타이틀도 거머쥐게 됐다.

윤 감독과의 인터뷰는 지난달 ‘국제시장’ 개봉 직전과 이달 7일 두 차례 진행됐다. 그 사이 영화는 정치 논란에 휩싸였다. 그는 “아버지에게 바치는 헌사로 만든 영화여서 진심이 통하길 기대했는데 논란을 겪으며 한동안 패닉에 빠졌다”고 했다. 그는 “인터뷰할 때 정치 얘기는 삼가라는 조언을 받았다”고 말했지만 그의 대화는 논란에 대한 해명으로 흘러갔다.

-흥행을 이만큼 예상했나.

“예상 못했다. 손익분기점(600만 명)을 넘길 것이라는 믿음은 있었는데 개봉 첫 주 스코어가 낮아 출발이 불안했다. 그러다 정치 논쟁이 붙었다. 논란은 불편했지만 흥행면에서만 보면 긍정적이었다고 본다.”

-이념 논쟁으로 ‘보수의 기수’가 됐다.

“나는 진보도 보수도 아니다. ‘국제시장’은 ‘12세 이상 관람가’ 가족 영화다. 아버지를 기리며 만든 영화라 어설픈 정치 메시지를 넣고 싶지도 않았다. 도식적으로 섞을 순 있지만 그건 더 비겁하다고 봤다.”

-수많은 현대사 중 흥남철수, 파독광부, 베트남전, 이산가족 찾기 4개를 주요 에피소드로 삼은 이유는 뭔가.


“가장 고민한 부분이다. 정치적으로 거세한 후 남은 선택지에서 특히 치열했던 배경을 정했다. 특히 1970년대 베트남전과 중동 파견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게 어려웠다. 개인의 드라마를 그리기에 베트남이 낫다고 봤다.”

-“힘든 풍파를 우리 자식이 아니라 우리가 겪은 게 참 다행”이라는 대사가 산업화 세대를 미화한다는 비판을 받으며 논란이 됐다.

“깜짝 놀랐다. 각본을 맡은 박수진 작가가 쓴 대사였는데 시나리오를 읽을 때도 전혀 문제를 못 느꼈다. 그 대사는 특정 세대의 상징이 아니라 그저 부모의 마음을 대변하는 거다. 나만 해도 두 아들이 없다면 이렇게 열심히 일 안한다. 진보든 보수든 부모라면 자식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을 거다. 부모 마음은 이념이나 세대를 초월해 똑같다.”

-박근혜 대통령이 애국심의 사례로 든 국기 경례 장면은 웃기려는 의도 아니었나?

“한 장면을 두고 관객의 반은 웃고 반은 탄식한다. 풍자로 해석하거나, ‘그땐 정말 그랬다’며 공감하거나, 애국을 생각할 수도 있다. 그건 관객 몫이다.”

-비판이 서운하진 않았나.

“영화는 김춘수 시인의 ‘꽃’과 같다. 이름을 불러주면 받아들여야지(웃음). 다들 남진(정윤호) 카메오 부분을 재미용으로만 본다. 그런데 거기엔 전라도 사람 남진이 경상도 사람 덕수의 목숨을 구한다는 함의도 있다. 영화 속 동남아 노동자 에피소드는 50년 전 독일로 떠나야했던 우리 역사를 통해 역지사지하길 바라며 넣었던 거다. 나름 소통과 화합을 말한 건데 그건 내 진심이다.”

영화 주인공 덕수(황정민)와 영자(김윤진)는 윤 감독의 부모 이름에서 따왔다. 윤 감독에게 ‘국제시장’은 “10년 동안의 숙원 사업”이었다. 아버지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처음 한 건 2004년. 세 번째 영화 ‘낭만자객’ 실패 후 슬럼프를 겪을 당시, 첫 아들이 태어나며 그는 아버지가 됐다.

-다음 영화가 4년 후 나왔으니 공백이 컸다.

“사회생활에서 첫 실패를 겪을 때 가장 사랑하는 존재(아들)를 얻었다. 대학 2학년 때 돌아가신 아버지를 처음으로 절실히 이해했다. 아버지가 퇴직 후 주식 투자 실패로 가세가 기울었다. 돌아가실 때 유언이 ‘미안하다’였다. 임종 때는 그 의미를 잘 몰랐는데 돌이켜볼수록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때 ‘아버지 그래도 고맙다’는 말을 못한 게 응어리가 됐다. 언젠가는 아버지 얘기를 해야 했고, 그만한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감독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재기의 동력이 됐다.”

-영화에서 가장 아끼는 장면은 뭔가.

“마지막 장면이다. 덕수의 독백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대사는 내가 썼다. 내가 아버지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이기도 했다.”
윤 감독의 이력은 특이하다. 고려대 경제학과 출신인 그는 영화계 입문 전까지 5년간 광고회사(LG애드)에서 근무했다. 감독 데뷔작 ‘두사부일체’(2001년) 이후 총 여섯 편의 영화를 내놓으며 충무로의 대표 흥행 감독이 됐다. 2002년 제작사 JK필름을 차려 10여 편의 영화 제작에도 참여했다. ‘윤제균표’ 영화는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뒀지만 평단의 평가는 좋지 않다.

-대중의 취향을 잘 아는 것 같다. 흥행 공식이란 게 있나.

“없다. 그렇게 머리로 찍은 영화가 ‘낭만자객’인데 망했다. 흥행 비결을 꼽는다면 공감 능력이다. 이른바 ‘윤제균표’ 영화라는 게 좋게 말하면 재미있고 감동적, 안 좋게 말하면 전형적이고 신파적인데 거기에 다수가 공감할 요소가 있는 것 같다.”

-악인이 없고, 역경을 극복하는 스토리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캐릭터가 단조롭고 꿈과 희망을 강요한다고 욕도 많이 먹지만, 내가 원래 굉장히 긍정적이다. 세상엔 ‘because of(때문에)’형 인간과 ‘in spite of(그럼에도 불구하고)’형 인간이 있다고 한다. 난 후자다.”

-영화판에 오기 전 광고회사를 다녔다.

“외환위기로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한 달간 무급휴직을 했는데 그때 쓴 시나리오가 당선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광고 회사에서는 주로 예산과 결산 업무를 했다. 예전엔 영화에 늦게 입문한 게 아쉬웠는데 이젠 그 경험이 영화감독으로, 제작자로서 많은 도움이 된다. ‘자존심을 버리면 인생이 즐겁다’는 걸 그때 배웠다. 신인 감독들은 더러 배우나 스태프와 갈등을 겪는데 나는 그런 적이 없다. 갈등이 생기면 도와달라며 무릎 꿇고 운다(웃음). 나처럼 ‘비굴한 감독’은 처음 봤다고들 한다. 그러면 어떤가. 영화만 잘되면 된다.”

-윤제균 사단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특정 배우와 자주 작업을 한다. 특히 여배우 중에는 하지원, 김윤진, 엄정화 등이 꼽힌다. 셋 다 다소 ‘세 보이는’ 여성이다.

“정이 많아서인지 좋은 사람들과 한 번 하면 계속 하게 된다. 내가 강한 이미지의 여성을 선호하는 건 맞는 거 같다. 보통 남자 감독들이 영화를 찍을 때 남주인공에는 자신의 모습, 여주인공의 모습에는 이상형의 모습이 투영된다고들 한다. 생각해보니 내 와이프도 센 편이다.(웃음)”

-본인만의 영화 작법이 있나.

“한 장면에 집중한다. 처음 기획할 때 한 장면을 생각하고, 나머지는 그 장면을 극대화하기 위해 달려간다. ‘국제시장’은 마지막을 위해 앞의 드라마가 필요했던 것이고, ‘해운대’에선 세 커플의 생사가 갈리는 장면을 위해 쓰나미가 상영 한 시간이나 지나서 몰려온 거다.”

- ‘국제시장’에서는 ‘윤제균표’ 영화라는 말을 벗어나고 싶는데.

“‘웰메이드’로 만들고 싶었다. 더 웃길 수 있었지만 코미디를 줄였다. 신파라는 소리 안 듣게 하려고 배우들에게 ‘오바 하지 말자’고 했다. 실제로 영화를 본 외국 프로그래머들은 울지 않았다. 유독 한국인들만 보고 우는 거 보면, 우리 특유의 한이 있는 거 같다.”

-‘국제시장’ 후속편도 만들 건가.

“해 보고 싶은 생각은 있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배우나 투자자도 다 허락해야 하기에 쉽진 않다. 덕수 가족이 1980~1990년대를 어떻게 헤쳐 현재에 왔을지 궁금하긴 하다.”

-목표는? 혹시 예술 영화를 찍을 생각은 없나.

“나중에, 더 나이가 들면. 내 꿈이 임권택 감독님처럼 되는 거다. 한국은 감독의 수명이 짧은데, 그렇게 오랫동안 영화를 찍을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최고령 감독이라는 얘길 듣는 게 목표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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