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희생 잊지 않을게요” 순직 아버지 제복 입고온 아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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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영예로운 제복賞 시상식]

“당신께서 있어야 할 자리인데…” 순직한 제복 공무원들의 유가족들이 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석해 제4회 영예로운 제복상을 받은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왼쪽부터 고 박인돈 소방경의 부인 김영희 씨(48), 고 박경균 경감의 딸 미희 씨(25), 고 배문수 경감의 부인 이은실 씨(38).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당신께서 있어야 할 자리인데…” 순직한 제복 공무원들의 유가족들이 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석해 제4회 영예로운 제복상을 받은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왼쪽부터 고 박인돈 소방경의 부인 김영희 씨(48), 고 박경균 경감의 딸 미희 씨(25), 고 배문수 경감의 부인 이은실 씨(38).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남편이 돌아오지 못한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지난해 7월 25일, 충남 아산경찰서에 “아파트에서 시비가 있다”는 신고가 접수된 날이었다. 아산서 배방지구대 소속 경찰관 남편은 순찰을 돌다 현장에 출동했다. 난동을 부린 취객을 상대로 음주측정을 했더니 혈중 알코올농도는 0.310%로 만취 상태였다. 취객은 갑자기 남편의 뒤에 다가가 흉기로 오른쪽 목을 찔렀다. 곧이어 남편의 동료 경찰관을 향해 달려들었다. 남편은 피를 흘리면서도 취객의 팔을 잡고 막아섰다. 이 과정에서 얼굴도 흉기에 맞았다. 고(故) 박세현 경위(순직 당시 46세)의 부인 성주희 씨(46)는 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4회 영예로운 제복상 시상식’에 참석해 남편을 떠올리며 흐느꼈다.

이날 박 경위를 포함해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온몸을 바쳐 일하다 순직한 경찰관 3명에게 ‘위민경찰관상’이 수여됐다. 순직 경찰관 가족들은 고인을 떠올리며 시상식 내내 눈물을 흘렸다.

서울 은평경찰서 교통안전계 팀장 고 박경균 경감(순직 당시 52세). 2013년 11월 팀원을 대신해 교통단속에 나섰다 오토바이에 치여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를 대신해 시상식에 참석한 딸 미희 씨(25)는 한때 ‘아버지 같은 경찰관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미희 씨는 “돌아가신 뒤에야 아버지가 힘들게 일하셨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렇게 위험한 일인지 생각도 못했어요. 아버지께 죄송하고, 고맙고….”

지난해 세월호 실종자 수색작업을 마치고 복귀하다가 헬기 추락사고로 숨진 강원도소방본부 특수구조단 소속 소방관 5명의 유족도 참석했다. 순직 소방관을 기리는 영상이 상영되자 고 이은교 소방교(순직 당시 31세)의 홀어머니 최경례 씨(57)는 아들을 떠올리며 통곡했다. 최 씨는 “아직도 너무 보고 싶고 미안하다. 지금까지 (아들 생각에) 두 시간마다 잠에서 깰 정도로 제대로 못 자고 있다”고 했다.

고 정성철 소방령(순직 당시 52세)의 외아들 비담 씨(25)는 아버지의 제복을 입고 시상식장에 왔다. 정 씨는 “상은 제가 아니라 아버지가 받기 때문에 제복을 입고 왔다. 아버지가 입었던 제복을 수선해서 맞춰 입었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제복 공무원 가족으로서의 긍지를 잃지 않았다. 고 신영룡 소방장(순직 당시 42세)의 부친 신부섭 씨(71)는 “아들이 국가와 민족의 부름에 따라 떳떳하게 갔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고 박인돈 소방경(순직 당시 50세)의 부인 김영희 씨(48)는 “아들(25)이 아빠를 자랑스러워하고 세상에서 가장 존경한다”고 했다. 행사 진행을 맡은 채널A 김태욱, 황수민 아나운서는 순서마다 “고맙습니다, 존경합니다”를 외쳤다.

시상식에 앞서 이날 수상 경찰관 2명에 대한 특별승진 임용식도 진행됐다. 김용서 대전지방경찰청 둔산경찰서 유성지구대 경사(46)와 김도정 부산지방경찰청 형사과 경위(48)는 각각 경위와 경감으로 특진했다. 강신명 경찰청장과 승진자 부인이 두 사람의 어깨에 새 계급장을 달아줬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여러분의 희생과 헌신은 언제나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은 “우리가 공기처럼 느끼고 있는 이 자유가, 사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하고 있는, 제복 입은 용사들 덕분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됐다. 고맙다”고 말했다.

수상자들은 상금 중 일부를 기부할 뜻을 비치기도 했다. 한승현 제주해양경비안전본부 항공단 경장(34)은 상금 전액을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김도정 경감은 상금 중 절반 정도를, 김용서 경위는 300만 원을 불우이웃을 돕는 데 쓰겠다고 전했다. 정지곤 해군작전사령부 특수전전단 제1특전대대 상사(42), 박현만 육군 제6군단 사령부 인사참모처 중령(48)도 상금을 형편이 어려운 부대원들을 위해 쓰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김재호 동아일보·채널A 사장, 김무성 대표, 문희상 위원장, 한민구 국방부 장관,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강신명 경찰청장 등 내외빈과 수상자 가족, 동료들이 참석했다.

< 영예로운 제복상 수상자 >

◇ 대상

수상자 없음

◇ 우수상


정지곤 상사(해군작전사령부 특수전전단 제1특전대대)

박현만 중령(육군 제6군단 사령부 인사참모처)

김도정 경감(부산지방경찰청 형사과)

한승현 경장(제주해양경비안전본부 항공단)

김재원 지방소방장(창원소방안전본부 마산소방서)

◇ 특별상


강원소방본부 특수구조단 (고 정성철 지방소방령, 고 박인돈 지방소방경, 고 안병국 지방소방위, 고 신영룡 지방소방장, 고 이은교 지방소방교)

김용서 경위(대전지방경찰청 둔산경찰서 유성지구대)

◇ 위민경찰관상


고 박세현 경위(충남지방경찰청 아산경찰서)

고 박경균 경감(서울지방경찰청 은평경찰서)

고 배문수 경감(전남지방경찰청 구례경찰서)

◇ 위민소방관상


박석기 지방소방장(충북소방안전본부)

김남길 지방소방위(전남소방본부 영광소방서)

홍성용 지방소방장(인천소방안전본부 남부소방서)

박근혜 대통령 축사 전문 “제복의 헌신으로 광복 70년 발전 이뤄” ▼

‘제4회 영예로운 제복상’ 시상식 개최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국가와 국민에 대한 헌신으로 소중한 상을 받으신 수상자와 유가족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특별상을 수상하신 고 정성철 소방령, 박인돈 소방경, 안병국 소방위, 신영룡 소방장, 이은교 소방교께서 보여주신 헌신에 깊은 애도와 경의를 표합니다. 또한 지금 이 시간에도 국토 수호와 국민 안전을 위해 땀 흘리고 있는 국군 장병들과 소방관, 경찰, 해양경비안전본부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올해는 광복 7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인데, 나라와 국민을 위해 헌신해 오신 제복 공무원 여러분이 있었기에 국민들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었고, 대한민국이 오늘의 발전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정부는 여러분의 노고가 헛되지 않도록, 안전하고 깨끗하고 신뢰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공직자 여러분의 명예를 높이고 처우를 개선하는 일에도 지속적으로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제4회 영예로운 제복상’ 시상식을 축하드립니다. 을미년 새해, 여러분 모두 건강하시고 가정과 하시는 일에 축복이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 심사위원단 “살신성인 무게 비교할수 없어 大賞 못뽑아” ▼

정상명 위원장
정상명 위원장
올해로 4회째를 맞는 ‘영예로운 제복상’에서는 대상 수상자가 뽑히지 않았다. 물망에 오른 제복 공무원들의 사명의식이 뛰어나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심사위원들은 형식에 맞춰 수상자를 정하기보다 상의 진정한 의미를 기리자는 취지에서 대상 수상자를 정하지 않는 대신 지난해 7월 세월호 실종자 수색작업을 마치고 복귀하다 헬기가 추락해 사망한 강원소방본부 특수구조단원들을 특별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4회째 심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상명 전 검찰총장은 8일 시상식에서 “지난해는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각종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발생하면서 제복 공무원들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그들의 사기가 위축됐던 한 해”였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그럴 때일수록 숭고한 희생정신을 가진 제복 공무원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는 것이 국민들이 안전을 느낄 수 있는 길”이라며 “영예로운 제복상이 제복 공무원들이 국민들로부터 감사와 존경을 받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 전 총장은 “현재 국방부, 경찰청, 국민안전처의 해양경비안전본부와 중앙소방본부의 추천을 받아 수상자를 뽑고 있는데 앞으로는 시민단체, 일반인 등으로 추천 통로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심사위원회는 앞으로도 봉사활동 같은 직무 외의 활동보다 직무의 기본과 원칙을 지킨 이들을 보다 높게 평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심사위원 명단 >

정상명 전 검찰총장(심사위원장)
이현옥 상훈유통 대표(보훈처 심사위원)
정호승 시인
김진국 강남밝은세상안과 원장(보훈처 심사위원)
임태희 119안전재단 이사장
한성동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
임규진 동아일보 편집국 부국장
서영아 채널A 보도본부 부본부장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제4회 영예로운 제복상 시상식#순직#영예로운 제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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