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원 내니 달랑 한갑… 카페선 “흡연석 없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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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뱃값 오르고 흡연공간 줄고… 애연가 기자, 비참했던 2015년 첫날



서울 중구의 한 커피전문점이 1일 흡연석 운영을 중단하고 매장 내 전 좌석을 금연석으로 운영하고 있다. 전날까지 흡연석과 금연석의 경계를 나누던 유리문에는 흡연석 사용 중단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서울 중구의 한 커피전문점이 1일 흡연석 운영을 중단하고 매장 내 전 좌석을 금연석으로 운영하고 있다. 전날까지 흡연석과 금연석의 경계를 나누던 유리문에는 흡연석 사용 중단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새해 첫날 담뱃값이 갑당 2000원씩 올랐다. 담배 피울 수 있는 공간은 대폭 제한됐다. 흡연자에게 더할 나위 없이 가혹한 환경이 닥친 것이다. 기자는 2004년부터 담배를 피우기 시작해 하루 흡연량이 두 갑에 이르는 애연가다. ‘앞으로 나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하루아침에 바뀐 흡연자들의 삶을 직접 체험했다.

새해마다 했던 금연 결심은 어김없이 무너졌다. 1일 기자는 눈을 뜨자마자 평소처럼 서울 강서구의 한 편의점을 찾았다. 점원은 마침 이날 새벽 입고된 담배를 진열하고 있었다. 담배를 주문하고 5000원을 내밀었다. 담배 한 갑과 돌아온 건 달랑 500원짜리 동전 하나. ‘예전 같으면 두 갑을 살 돈이었는데….’

상실감과 함께 두려움이 몰려 왔다. 매일 담배 두 갑을 사면 한 달에 12만 원이 넘는 돈을 더 지출해야 한다는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편의점 직원 김모 씨(34)는 “많은 손님이 두 갑을 사려다 1만 원에 가까운 가격이 생각났는지 한숨만 푹 쉬고 한 갑만 사 간다”며 위로했다. 담뱃값을 부담스러워하는 손님은 한둘이 아니었다. 근처 편의점에서 담배 한 갑을 사고 나온 대학생 박모 씨(25)는 “수입이 없는 학생에게 담뱃값 인상은 치명적이다. 금연 유도가 아니라 정부의 세금 수입만 늘어날 것 같다”며 짜증을 냈다. 그는 “예전엔 친구에게 담배를 얻기도 했었는데 이젠 ‘담배 인심’은 기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마음 놓고 흡연할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진 것은 오른 담뱃값보다 더 당혹스러웠다. 정부는 1일부터 모든 음식점과 커피전문점의 흡연석 운영을 전면 금지했다. 면적에 따라 일부 허용해 주던 유예 기간이 끝난 것. 앞으로 커피전문점에 흡연실을 설치하려면 ‘영업장과 완전 차단된 밀폐 공간에 탁자나 의자 등 편의시설은 놓을 수 없다’는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2012년 대형 건물 금연 조치 뒤 애연가의 즐거움이던 ‘커피 한 잔에 담배 한 개비’는 추억 속으로 사라질 처지에 놓였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이날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일대 대형 커피전문점을 돌아보니 5곳 중 4곳은 아예 흡연석을 폐쇄했다. 커피전문점을 찾은 흡연자들은 가게 밖으로 나와 찬바람을 맞으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최모 씨(22)는 “비싸게 산 담배를 마음껏 피울 공간도 없다는 게 답답하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광화문역 5번 출구 인근의 D 커피전문점은 기존 흡연석을 여전히 운영 중이었다. 서울 한가운데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커피전문점 관계자는 “지금은 계도 기간이어서 (흡연석을 운영해도)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에 확인한 결과 계도 기간(3개월)이어도 단속을 병행하고 있기 때문에 고의로 법을 위반한 업소나 흡연자는 각각 과태료 170만 원과 10만 원을 내야 한다. 기자는 흡연석에 앉아 손에 든 담배 한 개비를 조용히 내려놨다. 앞으로 흡연자들이 겪게 될 엄혹한 운명이 떠올랐다. 결국 이날 구매한 새 담배 한 갑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다시 굳은 ‘금연 결심’을 했다.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담뱃값 인상#흡연공간#애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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