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상복의 여자의 속마음]<91>김장과 군 제설작업의 공통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9일 03시 00분


코멘트
겨울이다. 가정에선 김장, 군대에선 제설작업을 걱정해야 할 때다. 김장과 제설작업에는 비슷한 점이 꽤 있다.

먼저 고생이다. 종일 쭈그리고 앉아 김치 수십 통을 만들어내야 한다. 특히 맞벌이 여성의 경우, 연말이라 회사 일도 바쁜데 컨디션까지 엉망이 된다. 병사들의 제설작업도 그렇다. 참호파기와 수로정비 등으로 총보다 익숙한 게 삽질이라지만 밤새워 눈을 치워봐야 티도 나지 않는다. 전방부대는 더하다.

김장이나 제설작업이나 일종의 ‘리추얼(의식)’이다. 시어머니와 행보관(행정보급관)이 주인공이 되어 ‘아랫것들’을 일사불란 움직이게 하는 리더십을 만끽한다. 며느리와 병사들에 대해 인건비 개념이 없다는 것도 공통점.

열정적인 시어머니나 행보관이라면 미리 빈틈없는 계획을 수립하기도 한다. 병사들 혹은 며느리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인지 때로는 새벽까지 전전반측 궁리를 한다.

리추얼은 자랑이 된다. 시어머니는 또래 모임에서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놓고 경쟁을 벌인다. 절인 배추를 사서 김장을 하는 것은 수치로 여겨진다. 극심한 고생만이 프라이드로 통한다. 수십 포기쯤은 명함도 못 내민다. 시누이들 김장까지 해줬다는 김치공장 수준의 여성도 있다. 행보관 역시 동료들과 어울리며 제설작전의 성과와 자신에게 쏟아진 높은 평가에 대해 열변을 토한다.

김장과 제설작업은, 자칫하면 ‘줄빠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훈련보다 더한 스트레스를 받는 게 작업이다. 작업에서 열외를 인정받지 못한 선임이 신경질을 부릴 경우 생활관(내무반) 분위기가 삼엄해진다. 후임으로 내려올수록 정도가 심해진다.

며느리 역시 회사 일보다 시어머니와의 김장이 힘들다. 집에 돌아와서는 분노를 시어머니의 아들에게 풀어버린다. 송년회 모임이 있다는 아들에게 쏘아붙인다. “현관문 비밀번호, 바꿔놓을 거야.” 시어머니는 줄빠따 먹이사슬의 최하위에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본인 역시 남편에게 그랬으면서도.

김장과 제설작업 모두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대다수 남성이 불만을 토로하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깟 김장, 일 년에 한 번이잖아.” 행보관 역시 힘들어하는 병사들에게 말한다. “자식들, 일 년에 몇 번이나 한다고 엄살이야.”

내년부터 전방부대 전투력 강화를 위해 제설작업이 민간용역 회사로 넘겨진다. 그래도 어떤 행보관들은 병사들의 손을 활용하고 싶을 것이다.

김장도 그렇다. 기업이 만든 김치가 마트마다 세일 중이다. 그럼에도 시어머니들은 손맛을 고집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니 김장이나 제설작업이 양상만 바뀐 채 면면히 이어지더라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한상복 작가
#김장#제설작업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