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얼레리꼴레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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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호 어문기자
손진호 어문기자
‘누구는 누구를 ○○했대요. 얼레리꼴레리.’ 어렸을 때 친구들을 놀릴 때나, 동네 담벼락에서 흔히 듣거나 보던 표현이다.

얼마 전 TV 자막에서 이 표현을 만났다. 거기엔 생뚱맞게도(?) ‘알나리깔나리’라고 적혀 있었다. 아이들이 남을 놀릴 때 하는 말로 사전에 올라 있는 건 알나리깔나리뿐이니 그럴 만도 하다. 얼레리꼴레리는 놀릴 때만이 아니라 뮤지컬과 마당극 제목으로도 등장할 만큼 즐겨 쓰는 표현이다. 그만큼 우리네 삶과 닿아 있는 말인데 사전들은 하나같이 화석 같은 ‘알나리깔나리’만을 표준어로 삼고 있다.

어리거나 키가 작은 사람이 벼슬을 했을 때 놀림조로 부르는 말이 ‘아이 나리’였다. 이게 알나리로 바뀐 것으로 본다. 다른 설도 있다. 조항범 교수(충북대)는 ‘알나리’의 ‘알’은 ‘아이’의 준말이 아니라 ‘알바가지, 알요강, 알항아리’ 등에서 쓰는 ‘알-’처럼 ‘작은’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라고 해석한다. 뒤의 ‘깔나리’는 뭘까. 알나리와 운율을 맞추기 위해 그냥 붙인 말로 본다. 다만, ‘꼴레리’의 ‘꼴’은 ‘꼴좋다’처럼 사람의 모습이나 행태를 낮잡아 부르는 말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말에는 이런 형태의 말이 꽤 있다. 미주알고주알 밑두리콧두리 가시버시 곤드레만드레 등등. “뭘 그렇게 미주알고주알 캐물어?”라고 할 때 미주알은 ‘항문을 이루는 창자의 끝 부분’을 가리킨다. ‘밑살’이라고도 한다. 미주알은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곳이다. 그래서 ‘미주알고주알’은 ‘밑두리콧두리’처럼 무엇을 꼬치꼬치 캐어묻는 모양을 가리킨다. 고주알은 알나리깔나리의 깔나리, 밑두리콧두리의 콧두리, 가시버시의 버시, 곤드레만드레의 만드레처럼 별 뜻 없이 덧붙인 말이다.

다른 건 그렇다손 치더라도 부부(夫婦)를 뜻하는 토박이말 가시버시는 조금 설명이 필요하다. 가시는 아내를 뜻한다. 그렇다면 버시는 남편을 가리키는 말일 듯도 한데 그렇지가 않다. 아무 의미도 없다. 남편이 없어도 가정은 유지된다는 뜻일까. 새삼 남자의 처지가 서글프다.

알나리깔나리는 생활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 말이다. 이런 말이 아직까지 표준어의 안방을 차지하는 건 언중의 말 씀씀이를 헤아리지 못한 것이다. 얼레리꼴레리를 복수표준어로 인정해 언중이 상황에 맞게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옳다.

“작년처럼 올해에도 복수정답 나왔대요. 얼레리꼴레리!”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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