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로 못바꾼 박준혁, 성남에 FA컵 안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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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승부차기서 서울 꺾고 환호
종료직전 PK전문 전상욱 투입 시도… 볼아웃 안돼 선수 교체 못해 발동동
박준혁, 예상 깨고 눈부신 선방쇼… 전문GK로 바꾼 서울이 되레 눈물

MVP 성남 박준혁
MVP 성남 박준혁
연장 후반 12분, 최용수 FC 서울 감독(41)이 골키퍼를 김용대에서 유상훈으로 바꿨다. 2분 뒤 김학범 성남 FC 감독(54)도 골키퍼 박준혁을 벤치에 앉아 있던 전상욱과 교체하려고 준비했다. 모두 승부차기를 대비한 포석이었다. 그러나 이때 묘한 상황이 벌어졌다. 경기 종료시간은 가까워지고 있는데 볼이 아웃되지 않아 경기가 중단되지 않았던 것. 김 감독은 선수들에게 볼을 빨리 경기장 밖으로 내보내라고 소리쳤지만 볼을 갖고 있던 팀은 서울이었다. 당연히 최 감독은 선수들에게 패스 플레이를 벌이며 경기를 중단시키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결국 최 감독의 의도대로 경기는 그대로 종료됐고, 발을 동동 굴리던 전상욱은 그라운드를 밟지도 못하고 벤치로 다시 돌아갔다. 어쩔 수 없이 성남의 골문은 박준혁이 계속 지켜야만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서울이 유리한 듯했다.

그러나 ‘페널티킥의 사나이’로 불리는 유상훈은 최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반면 박준혁은 신들린 듯한 ‘선방 쇼’를 펼치며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 ‘스타 탄생’의 주인공이 됐다. 박준혁은 승부차기에서 서울의 첫 번째 키커 오스마르의 슛을 막아낸 데 이어 2-1로 앞선 상황에서 서울의 세 번째 키커 몰리나의 슛까지 몸을 날려 주먹으로 쳐내는 선방 쇼를 펼쳤다. 그동안 정선호 등 성남 키커들은 차분히 상대 골네트를 갈랐다.

성남이 2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은행 FA(축구협회)컵 결승에서 승부차기까지 가는 혈투 끝에 서울을 꺾고 정상에 올랐다. 서울과 연장까지 120분간 0-0으로 비긴 성남은 승부차기에서 4-2 승리를 거뒀다. 일화가 모기업이었던 1999년과 2011년에 이어 FA컵 세 번째 우승이다.

피 말리는 승부일수록 승부차기에서 승패가 갈릴 확률이 높다. 또 승부차기에서는 약팀이 강팀을 이기는 ‘반란’이 자주 일어난다. 이날도 그랬다. 2012년 K리그 우승과 2013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준우승을 한 서울은 이번 시즌 K리그 클래식 4위를 달리고 있었다. 성남은 K리그 클래식 12개팀 중 11위다. 지난해 말 시민구단으로 전환한 뒤 새롭게 팀을 짜고 있는 성남은 2004년 9월부터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서울과 12번 싸워 3무 9패로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서울은 안양 LG 시절인 1998년 이후 16년 만에 정상에 도전했지만 후반 35분 김진규의 헤딩슛이 골포스트를 맞고 나오는 등 골 운이 따르지 않았다. 올 시즌 K리그 클래식에서 ACL 티켓을 따내지 못한 서울은 FA컵 우승팀에 주어지는 ACL 출전권을 노렸지만 박준혁의 벽에 막혀 고개를 숙였다. 성남은 우승상금 2억 원을, 승부차기의 영웅 박준혁은 최우수선수(MVP) 상금 300만 원을 각각 받았다.

김학범 감독은 “일화 시절인 1999년 FA컵에서 우승한 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K리그를 3연패했다. 시민구단으로 변신해 일군 첫 FA컵 트로피를 발판으로 성남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구단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박준혁#성남#fa#승부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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