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 電氣도 안팔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1일 03시 00분


코멘트

전력소비 증가율 2014년 0.3%에 그쳐… 16년만에 최저

《 ‘산업의 혈액’으로 불리는 전기(電氣)가 안 팔리고 있다. 경기 침체와 대중(對中) 수출 둔화 등으로 한국의 전력 소비 증가율이 외환위기를 겪었던 1998년 이후 16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겨울철에 난방기 하나 마음 놓고 틀지 못하던 극심한 전력난은 면하게 됐지만 이제는 남아도는 전기를 어떻게 처리할지를 두고 거꾸로 고민하는 상황에 빠졌다. 전문가들은 절전형 전기제품 보급이 확대되고 철강, 석유화학 등 전력 다소비 산업의 성장이 주춤거리는 것 등을 감안해 정교한 전력 수급 대책을 새롭게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

○ 전력 소비량, 외환위기 이후 최저치

20일 산업통상자원부와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 1∼9월 국내 전력 소비량은 3583억 kWh로 지난해 같은 기간(3574억 kWh)보다 0.3% 증가했다. 심야전력(―13.0%), 주택용(―3.0%) 등의 소비가 감소한 가운데 전체 전력 소비에서 3분의 2가량을 차지하는 산업용 전력의 소비 증가율도 3.2%에 그쳤다.

전력 소비 증감률은 경기 상황을 가늠할 수 있는 대표적인 지표 가운데 하나다. 경기가 침체되면 공장 등의 가동이 줄어 그만큼 전기를 덜 쓰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은 전력 소비와 경기 사이 연관도가 높다. 한국의 주력 산업인 철강, 석유화학 등이 대표적인 전력 다소비 업종이기 때문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3년 말 기준 철강, 석유화학, 조립금속 등 3개 업종이 쓴 전기가 국내 전체 전력 소비(주택용 등 포함)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0.8%에 이른다.

한국의 전력 소비 증감률은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3.6%를 나타낸 이후 줄곧 5% 이상을 유지해 왔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2009년(2.4%)에 잠시 주춤했지만 이듬해인 2010년에 다시 10.1%까지 높아졌다. 하지만 이후 매년 증가율이 반 토막 났고 지난해에는 사상 처음으로 1%대 증가율에 그쳤다. 올해는 이보다도 더 낮은 상황이다.

○ 중국 수출 감소가 주원인

국내 경기 부진 이외에 전력 소비 증가율이 줄어든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대중 수출 둔화다. 대표적인 전력 소비 업종인 철강, 석유화학 등이 이끌던 대중 수출 실적은 최근 악화되고 있다.

2000∼2011년에 연평균 19.8%씩 성장하던 대중 수출은 지난해 성장률이 8.6%에 그쳤고 올 들어서는 10월 말 기준 ―0.7%를 나타내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과거 중국은 철강, 석유화학 제품 등 중간재를 한국에서 들여와 완제품을 만들어 수출했지만, 지금은 중간재를 현지에서 직접 생산하는 구조로 바뀌었다”며 “공급 과잉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대중 중간재 수출은 당분간 고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철강, 석유화학, 조립금속의 전력 소비 증가율은 2000, 2011년 평균 7.3%에서 2012, 2013년에는 평균 3.4%로 반 토막 났다.

정부가 지속적으로 추진한 절전정책도 전력 소비 증가율 둔화에 한몫했다.

전문가들은 변화하는 전력 수요를 정교하게 분석해 발전소 건설 등 수급계획을 다시 짜야 한다고 지적한다. 수요 예측이 어긋날 경우 극심한 전력난을 겪거나 과잉 설비투자에 세금이 낭비되는 등 피해는 국민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김철현 에너지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안정적 전력 수급과 효율적 투자 결정을 위해 전력소비 구조에 대한 심층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전력소비 증가율#불황#전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