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마음을 산 편지… 마음을 찬 편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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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귀한 편지박물관/숀 어셔 엮음·권진아 옮김/384쪽·3만3000원/문학사상
엘리자베스 여왕-피츠제럴드 등 손 편지-전보 등 125통 재미 쏠쏠

스콧 피츠제럴드(왼쪽 사진 왼쪽)는 소설을 쓰지 않을 땐 친구 어니스트 헤밍웨이나 아내 젤다, 딸 스코티에게 편지를 쓰곤 했다. 딸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난 행복을 믿지 않는단다. 불행도 절대 믿지 않아. 그런것들은 무대나 스크린, 책장에서나 보는 거야.” 오른쪽 사진은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팬케이크 조리법을 알려주려고 쓴 친필 편지다. 문학사상 제공
스콧 피츠제럴드(왼쪽 사진 왼쪽)는 소설을 쓰지 않을 땐 친구 어니스트 헤밍웨이나 아내 젤다, 딸 스코티에게 편지를 쓰곤 했다. 딸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난 행복을 믿지 않는단다. 불행도 절대 믿지 않아. 그런것들은 무대나 스크린, 책장에서나 보는 거야.” 오른쪽 사진은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팬케이크 조리법을 알려주려고 쓴 친필 편지다. 문학사상 제공
“오늘자 신문에서 메추라기 통구이 앞에 서 계시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약속드렸던 팬케이크 조리법을 보내지 않았다는 생각이 났어요. 그래서 급히 조리법을 보내드립니다.”

소박하니 정감 있는 편지글이다. 그런데 받는 이가 대통령, 보내는 이는 엘리자베스다. 우아하고 부드러운 필체를 담고 있는 편지지 위쪽엔 ‘버킹엄궁’이라고 인쇄돼 있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1960년 1월 미국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쓴 편지다.

편지는 이 맛이다. 편지지를 고르고, 문구를 다듬어, 세상 유일의 필체로 마음을 전하는. 파워블로거인 엮은이도 아날로그 손편지로 먹고산다. 그는 세계 곳곳에서 편지와 통신문을 수집해 온라인 편지박물관 ‘레터스 오브 노트(Letters of Note·이 책의 원제)’를 운영한다. 주간 방문자 수가 약 150만 명이다. 이 중 손으로 쓰거나 낡은 타자기를 두드린 편지와 전보 125통을 추려 원본 이미지와 엮은 게 이 책이다.

미국 대통령은 단골 수신자다. 1958년 3월 엘비스 프레슬리가 입대하자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제발 엘비스에게 미군 헤어스타일은 시키지 마세요”라는 팬들의 편지를 받았다. 1860년 10월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에이브러햄 링컨은 11세 소녀에게서 “구레나룻을 기르면 훨씬 나아 보일 것”이라는 편지를 받았다. 링컨은 답장도 하고, 구레나룻도 길렀고 대선에서 이겼다.

예술가들의 편지는 줄긋기 할 곳이 많다. 오스카 와일드는 1891년 독자에게 쓴 답장에서 “예술작품은 꽃이 쓸모없듯이 쓸모없다. 꽃은 그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피어난다”고 했다. 호주 가수 닉 케이브는 1996년 MTV 어워드 최고 남자가수 부문 후보로 오르자 MTV에 정중하게 수상을 거절하는 편지를 보냈다. “제 뮤즈는 말이 아니고, 저도 경마를 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20세기 미국 최고의 인기 작가여서인지 스콧 피츠제럴드가 주고받은 편지가 많다. 1934년 5월 그가 네 번째 소설 ‘밤은 부드러워’에 대한 의견을 묻자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잔인하게 답했다. “실제로 일어날 법하지 않은 일을 꾸며서는 안 되지.… 정말 진짜처럼 꾸며내서 나중에 실제로 일이 그런 식으로 일어나도록 해야지.… 모든 게 보고 듣는 것에서 나와. 자넨 보는 건 잘해. 하지만 듣지를 않지.”

아내 젤다와 불화했던 피츠제럴드. 11세 딸에게 보낸 편지엔 애정을 듬뿍 담았다. “용기에 대해, 청결에 대해, 효율성에 대해 걱정해라.… 대중의 의견에 대해, 과거에 대해, 미래에 대해, 실패에 대해, 남자아이들에 대해 걱정하지 마라.”

추신: 노안이 온 독자라면 돋보기를 준비하자. 글자가 깨알이다. 넓은 지면 텅텅 비워놓고 뭔 일이냐고 출판사에 따졌더니 “공동 제작자인 저작권자가 원서의 글자 크기와 디자인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요구했다”고 해명했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진귀한 편지박물관#엘리자베스 여왕#피츠제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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