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에 빙의된 대역, 그 대역에 빠진 설경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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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의 독재자’서 주인공 열연

‘나의 독재자’에서 김일성 대역 배우답게 퉁퉁한 모습으로 나왔던 그는 차기작인 ‘서부전선’의 병사 연기를 위해 벌써 살을 쏙 뺐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나의 독재자’에서 김일성 대역 배우답게 퉁퉁한 모습으로 나왔던 그는 차기작인 ‘서부전선’의 병사 연기를 위해 벌써 살을 쏙 뺐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는 크게 둘로 나뉜다. 맡은 캐릭터를 자기화하는 배우, 배역에 온전히 흡수돼 버리는 배우. 설경구(46)는 후자다. ‘박하사탕’(1999년) ‘오아시스’(2002년) ‘실미도’(2003년) 같은 작품에서 그는 메소드 연기(극중인물과 동일시하는 극사실주의 연기)의 극치를 보여줬다.

지난달 30일 개봉한 ‘나의 독재자’는 주인공 김성근 역을 맡은 설경구 연기의 진가를 또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1972년 남북정상회담 리허설을 위한 김일성 대역으로 뽑힌 성근은 배역에 몰입하다 진짜 김일성이라고 믿어버리는 지경에 이른다. 회담이 무산되고 노인이 돼서까지 배역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그는 아들(박해일)에게 골칫거리다. 메소드 배우가 ‘메소드적인 인생’을 연기한 셈이다.

설경구는 “배우보다 아버지에 주목했다”고 했다. “(김일성 배역에서) 못 빠져 나온 건지, 안 빠져 나온 건지. 난 일부러 안 빠져 나온 거라고 봐요. 일종의 고집인 거지. 그런데 노인이 된 성근이 아들 태식하고 눈을 마주치지 않아요. 그건 미안함 때문이죠. 그렇게 살게 된 것에 대한…. 우리 시대 아버지들이 다 그렇잖아요.”

자신을 김일성이라고 믿으며 닮아가는 사람을 연기하는 것은 김일성을 연기하는 것보다 복잡하다. 북한 선전영화를 보며 김일성의 손동작을 따라하고 사투리 지도를 받았지만 “맡은 배역이 김성근인 만큼 김일성을 닮으려고 애쓰진 않았다”고 했다.

다만 특수 분장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노인이 된 성근을 연기하기 위해 촬영 때마다 다섯 시간씩 분장을 했다. “분장 선생님이 영화 ‘은교’(2012년) 때 하신 분인데, 저 분장 해줄 때마다 해일이는 전례가 없어 이 짓을 10시간씩 했다면서 ‘불쌍한 해일이’ 얘기만 했어요.” 박해일은 ‘은교’에서 노교수 이적요로 나왔다.

영화 속 김성근만큼은 아니지만 그에게도 잔상이 오래 남았던 작품은 있다. ‘박하사탕’ 땐 촬영장 밖에서도 주인공처럼 살다 보니 주변사람들이 불편해할 정도였다고 한다. ‘오아시스’에선 살을 20kg 가까이 빼고 ‘역도산’(2004년)에서는 반대로 그만큼 늘렸다. 이번엔 김일성 식 풍채를 갖기 위해 살을 7∼8kg 찌웠다.

최근에는 6·25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 ‘서부전선’ 촬영을 하느라 오랜만에 군복을 입고 “딸과 동갑인”인 여진구와 연기호흡을 맞춘다. “나는 그런 옷(군복) 입고 하는 게 편해. 그런데 살은 지금보다 더 빼야 해요. 또 굶어야지 뭐….”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나의 독재자#설경구#김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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