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Travel]새하얀 구절초 사잇길 지나 불타는 단풍 세상으로 터벅터벅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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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하 기자의 힐링투어/곤지암 회담숲에서 노닐다]

‘귀한 것일수록 흔하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하겠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다. 우리를 숨쉬게 하는 공기를 보자. 귀한 것이지만 우린 그 존재가치를 까맣게 잊고 지낸다. 너무도 흔해서다. 부모의 사랑도 그렇다. 가없는 내리사랑으로 성장했건만 우린 그걸 당연시한다. 자연도 같다. 사람은 자연과 더불어 산다. 그리고 모든 게 자연에서 비롯됐으니 단 한순간도 자연을 벗어나 살 수가 없다. 그런데 어떤가. 그 자연을 우리는 극복의 대상으로 삼고 줄곧 해쳐만 왔다. 말초적 편의에 경도된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귀하지만 흔한 것의 가치. 그건 그게 사라져야 비로소 알게 된다. 공기가, 부모사랑이, 수려한 자연이 그렇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깨달을 즈음에는 이미 늦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상념에 빠진 것은 며칠 전 찾은 ‘곤지암 화담(和談)숲’에서다. 너무도 아름다운 수목원에 퍼뜩 고마움을 느끼는 동시에 막연한 두려움이 뇌리를 스쳐갔다. 모든 자연이 이 화담숲처럼 스스로 완벽하게 아름다웠을 텐데…. 부주의와 무관심, 편의적인 발상과 목적지향의 난개발로 제 모습을 잃은 주변 자연을 생각하니 나의 이런 유유자적이 오히려 죄스럽게 여겨졌다. 더불어 이런 후회와 반성이 너무 늦은 것은 아닐지, 그게 바로 그 뜻 모를 두려움의 실체였던 것은 또 아닐지.

이 가을에 곤지암 화담숲을 찾는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귀하지만 흔한 것에 대한 가치를 음미해 볼 수 있어서다. 세상의 일을 자연 속에서 생각하는 여유. 그건 아무리 지나쳐도 괜찮다. 도시 콘크리트 숲에서는 도저히 체험할 수 없는 자연의 특혜니까. 숲길을 걸으며 상념에 젖는 이 가을의 어느 하루가 분명 자신을 좀더 성숙하고 현명하게 이끌어줄 것임도 확신한다. 그래서 권하는데 더 늦기 전에 곤지암 화담숲으로 가보자. 그래서 멋진 가을과 대화를 나누며 잠시나마 자연과 친구가 되는 체험을 한번 해 보자.

막 피어난 억새가 무리지어 핀 하얀 구절초와 한데 어울린 이 오솔길. 가을의 풍정이 한껏 살아나는 멋진 길이다(오른쪽 사진). 곤지암 화담숲에는 산길을 오르기 어려운 이들을 위해 모노레일도 운영한다. LG상록재단 제공·곤지암=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막 피어난 억새가 무리지어 핀 하얀 구절초와 한데 어울린 이 오솔길. 가을의 풍정이 한껏 살아나는 멋진 길이다(오른쪽 사진). 곤지암 화담숲에는 산길을 오르기 어려운 이들을 위해 모노레일도 운영한다. LG상록재단 제공·곤지암=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자연 생태계 살려 18개 테마정원 마련

곤지암 리조트로 가는 길은 내겐 참 익숙하다. 겨울이면 스키를 타러 수도 없이 오간 덕이다. 그런데 이 가을엔 낯설다. 초록빛 수목의 산과 파릇한 초원의 스키슬로프가 눈에 익지 않은 탓이리라. 게다가 스키시즌과 달리 그리도 한적할 수가 없다. 그 고즈넉함이 참으로 이 가을과 잘 어울린다. 마침 그날은 비온 뒤 갠 이튿날이었다. 하늘도 맑고 초목의 싱그러움도 짙어 상큼한 가을기운이 더더욱 생생했다.

곤지암 리조트는 서쪽의 노고봉(570m)과 동쪽의 발이봉(512m)으로 이뤄진 두 산사면 사이에 있다. 그 노고봉 아래 평지가 골프장이고, 발이봉을 향한 북동사면은 스키슬로프다. 곤지암 화담숲은 그 노고봉의 반대편인 발이봉의 산자락, 거기서도 스키슬로프와 마주한 산사면(면적 76만330m²·약 23만 평)에 조성됐다. 이 숲은 자연 상태 그대로도 식물상이 좋다. 그래서 자연생태계를 제대로 복원해 사람들이 체험하도록 조성하려는 수목원입지로도 아주 적합했다. LG상록재단이 4300여 종의 식물과 동물 곤충을 더해 이곳에 곤지암 화담숲을 만든 이유다.

그래서인지 곤지암 화담숲은 다른 수목원과는 많이 달랐다. 우선 산기슭이라는 지형과 입지다(대개 수목원은 평지에 조성한다). 그 산지의 수풀에서 곤충(반딧불이)과 동물(원앙 남생이 등 멸종희귀동물 포함) 생태계를 함께 복원하고 있다는 것도 특별하다. 그리고 특색 있는 다양한 정원(모두 18개)을 한군데 모으는 형태도 다른 점이다. 대개의 수목원은 종별로 평지에 조성한다. 그러다보니 규모가 커져 정원이 아닌 공원형태를 띠기 마련이다.

산기슭 비탈임에도 별 어려움 없이 18개 주제정원을 편히 둘러볼 수 있는 점도 매력 포인트다. 계단이 아닌 경사로 형태의 보드워크(나무덱)와 흙길 덕분이다. 보드워크로는 어르신은 물론 유모차와 휠체어 통행까지 가능하다. 세 개의 계곡에 물을 흘려보내 연못의 수량을 유지하고 폭포까지 만든 것도, 정상부로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모노레일을 설치한 것도, 18개 주제정원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킨 동선설계와 다양한 분재를 자연 속에서 감상하도록 한 것도 화담숲 수목원의 자랑거리다. 조경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고 할 만하다. 전체적 구성과 철학은 우리 정원문화의 최고봉으로 평가되는 소쇄원(전남 담양·16세기 조선 중종 때 학자 양산보가 지은 별서정원)과 통하는 느낌까지도 받는다.

연못엔 원앙 60여 마리 유유자적

곤지암 화담숲의 문지기는 ‘천년단풍’이다. 이 노거수를 지나면 커다란 원앙연못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 물 뒤로는 온통 숲이다. 연못의 안주인은 천연기념물(327호) 원앙 무리. 2012년 방사한 것인데 올여름 처음 새끼 25마리가 부화해 60여 마리로 늘었다. 시월은 수컷이 화려한 깃털로 몸단장을 하는 시절. 이미 털갈이를 시작해 지금 가면 멋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좀처럼 보기 힘든 토종거북이 남생이도 이 연못에 함께 산다. 한낮이면 바위에서 일광욕을 즐기는데 가까이 다가가자 이내 물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연못가에는 카페 등 휴게시설이 있다. 리조트의 수변 가든을 연상시킬 만큼 고급스럽다. 카페를 지나 왼쪽 길로 접어든다. 조금 오르다보니 ‘이끼원’이 나타난다. 이끼는 숲의 생태계가 완벽하게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 산중의 수목 아래로 이끼가 넓게 깔린 광경을 보기란 국내 어디서고 쉽지 않다. 걷다보니 ‘숲 속 산책길’이란 푯말을 지난다. 산책하며 여유를 갖고 자연과 대화를 해보라는 뜻이리라. 내가 찾은 날은 비온 끝에 비로소 가을기운이 느껴지던 날. 새하얀 구절초(九節草)가 곳곳에 무리지어 피어 있었다. 구절초란 ‘음력 9월 9일에 약재로 쓰기 위해 꺾어 모은다’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가을의 전령사라고나 할까.

숲엔 큰 다리가 있다. ‘약속의 다리’다. 거기 서니 곤지암 화담숲과 멀리로 스키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다리를 건너면 ‘테마원’이다. 주제정원이라 할 수 있는 ‘특성화 식물군’이 모여 있는 지역이다. 진달래와 철쭉으로 뒤덮인 산자락을 지나니 ‘벚나무원’. 이후엔 ‘수련원’ ‘수국원’이 차례로 이어진다. 길가엔 억새도 막 등장해 구절초와 묘한 조화를 이룬다. 모노레일 상부역을 지나면서부터는 내리닫이. 계곡 건너의 오를 때와 반대편 숲에 들어서자 새소리가 시끄러울 정도다. 이름하여 ‘새 이야기 길’인데 오색딱따구리 박새 등 25종이 서식한단다. 숲길 입구엔 상처투성이 고목(자작나무)이 있는데 숱한 흠집은 모두 딱따구리가 쪼아댄 흔적이다.

파란 가을하늘 아래 자작나무의 하얀 나무껍질이 더더욱 하얗게 빛난다. 곤지암 화담숲에 조성된 자작나무 숲.
파란 가을하늘 아래 자작나무의 하얀 나무껍질이 더더욱 하얗게 빛난다. 곤지암 화담숲에 조성된 자작나무 숲.
화담숲의 2대 명물, 단풍나무원 반딧불이원

지나다보니 나무판에 올려둔 도토리가 보인다. 동물들을 위한 것이다. 숲엔 여섯 종이나 되는 도토리나무가 모두 있다. 굴참 갈참 상수리 신갈 졸참 그리고 떡갈나무까지. 이들 도토리나무는 제각각 잎과 열매의 모양으로 구별된다. 안내하던 환경조성팀 나석종 과장의 설명이 재밌다. “잎이 큰 떡갈나무는 떡을 찔 때 바닥에 깐다 해서, 신갈나무는 짚신바닥에 깔았다 해서 그리 불린답니다.” 올해는 도토리가 풍년이라 숲 바닥에 지천이다. 그런데 한 여성 산책객이 큰 봉투에 도토리를 가득 담아 내려오고 있었다. 민망한 모습이다.

곤지암 화담숲의 18개 주제정원 중에 가장 관심이 간 것은 ‘단풍나무원’과 ‘반딧불이원’이었다. 단풍나무원에는 내장사 당단풍 등 440종이나 되는 다양한 단풍나무가 자라고 있다. 반딧불이원은 여기서 좀더 내려가면 만나는 널찍한 계곡에 있다. 그곳은 온통 풀로 덮여 언뜻 보기에도 신비스럽다. 국내 단 세 종의 반딧불이 중 두 종(애반딧불이와 늦반딧불이)이 이곳에 서식한다. 반딧불이는 생태계가 완벽하게 유지되어야만 산다. 그래서 각각 2009년과 2013년부터 국립공원연구원과 함께 복원연구를 하고 있다. LG상록재단이 반딧불이원 조성에 나선 것은 곤지암 화담숲 전체를 반딧불이가 서식하는 완벽한 생태계로 복원하기 위해서다. 올 6월에 처음으로 애반딧불이 축제를 열었는데 매일 매진사태를 빚을 정도로 인기였다. 이곳은 국내서 반딧불이가 불을 켜고 나는 광경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희귀한 숲이다.

12월부터 3월까지는 문 닫아

곤지암 화담숲이 문을 연 건 지난해 6월. 1년이 지났건만 이곳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관람시설이기 이전에 생태계복원을 목표로 한 현장 연구시설이라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은 때문이다. LG상록재단이 매년 12월 1일부터 이듬해 3월 말까지 문을 닫는 것도 그래서다. 그러니 올해 이 숲을 거닐 수 있는 날은 11월 말까지뿐이다. 여럿이 가는 것보다는 두세 명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둘러보는 게 좋을 듯하다. 그게 바로 ‘화담(和談)’이다.

화담은 이 수목원을 세운 LG그룹 구본무 대표이사 회장(69)의 아호로 ‘정답게 이야기를 나눈다’는 뜻이다. 구 회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LG상록재단은 1997년 산림환경을 보호하고 연구하기 위해 설립됐다. 곤지암 화담숲 등 다양한 시설을 운영하며 야생 동식물 보호와 연구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구 회장은 2000년 자연도감 ‘한국의 새’를 발간할 만큼 자연에 관심이 깊은 기업가다.

곤지암 화담숲 주막에서 맛보는 두부김치. 영월에서 생산한 메주용 하얀 콩을 갈아 직접 만들었다.
곤지암 화담숲 주막에서 맛보는 두부김치. 영월에서 생산한 메주용 하얀 콩을 갈아 직접 만들었다.
영월産 메주 콩으로 만든 두부에 산삼막걸리 한 잔!

곤지암 화담숲에도 맛 집이 있다. 원앙이 사는 연못가의 ‘번지 없는 주막’(아직 이름이 없어 이렇게 부르고 있다)이다. 메뉴는 김밥 해물파전 녹두빈대떡 감자야채전 두부김치. 음식솜씨 좋기로 이름난 요리사가 개발한 레시피와 조리법으로 음식을 내는데 재료를 아끼지 않아 맛이 좋다. 두부가 특별한데 영월 백태(메주용 흰콩)를 갈아 주문진 심해의 바닷물을 간수로 해서 만든다. 이 지역 특산인 산삼막걸리와 토마토막걸리도 맛볼 수 있다.

▼Travel Info▼

곤지암 화담숲:
2010년 문을 열었으나 정식개장은 2013년 6월 1일. 숲 산책로 외에도 식당과 카페, 테라스가 갖춰져 있다.

◇찾아가기: 곤지암 리조트 안에 있다. 중부고속도로∼곤지암 나들목 ▽주소: 경기 광주시 도척면 도척윗로 278 ▽전화: 031-8026-6666 ▽홈피: www.konjiamarboretum.com

◇이용 ▽개장: 4월 초∼11월 말 ▽개장시간: 오전 8시 반∼오후 6시 ▽입장료: 어른 8000원(어린이 어르신 6000원) ▽모노레일: 수시운행. 요금은 3000원(2000원)

◇산책로: 총연장 3.5km로 두 시간가량 소요

곤지암=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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