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북 전단 놓고 北 의도대로 南南갈등 벌일 건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13일 03시 00분


북한이 10일 대북 전단을 향해 고사총탄을 발사하는 총격 도발을 한 데 이어 남북 대화까지 위협하고 나섰다. 조선중앙통신은 탈북자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해 “미국과 남조선 당국의 배후 조종과 묵인하에 의도적으로 강행된 정치적 도발”이라며 “예정된 제2차 고위급 접촉도 물 건너간 것이나 다름없다”고 보도했다. 북이 경기 연천군 일대 우리 영토에 총탄을 발사한 도발에 대해 사과하기는커녕 이번 사태의 책임을 떠넘기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의 행태가 개탄스럽다.

북의 노림수는 뻔하다. 남측에 겁을 줘서 ‘상호 비방 중지’를 명분으로 끈질기게 요구해온 대북 전단 살포 중단을 관철하려는 속셈이다. 전단 살포를 반대하는 여론이 우리 내부에서 높아질 것을 기대하고 치밀하게 계산된 총격 도발을 한 뒤 관영 매체를 동원해 남남(南南)갈등을 유발하는 압박에 나섰다고 봐야 한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북의 도발이지, 대북 전단 살포가 아니다.

어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어쨌든 우리가 북을 자극하는 일은 가능한 한 안 하는 게 좋겠다”고 말한 것은 신중치 못했다. 전단 살포를 막지 못했다며 우리 정부를 비판하는 야당도 마찬가지다. 이번에 북의 요구대로 대북 전단 살포를 금지시킨다면 북이 앞으로 대화를 미끼로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나 한미 군사훈련 중단을 요구할 경우 다 들어주어야 한다는 말인가.

대북 전단은 밀폐된 북에 자유가 무엇인지를 일깨워주는 외부정보 유입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북한인권운동가인 수잰 숄티 미국 디펜스 포럼 재단 회장은 “북한 내부로의 정보 유입은 국제법 위반도 아니고 북한 인권보호와 개선의 역할이 크다”고 강조했다.

북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은 감춰진 진실이 북 내부에 확산돼 체제에 균열이 생길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일부 전단에 1989년 밀입북 후 수감됐던 임수경이 ‘감옥귀신’이 되지 않고 국회의원이 됐다는 내용이 들어간 것도 그렇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임 의원은 전단 살포를 비판했지만 ‘통일의 꽃’으로 북에 널리 알려진 그의 소식을 북 주민들이 접하면 신선한 충격을 받을 것이다. 다만 민간단체들이 북에 빌미를 주지 않도록 심야에 풍선을 날리는 등의 전략적 방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북이 인천에 실세들을 보낸 지 일주일도 안 돼 서해와 육상에서 잇단 도발을 한 것은 유감스럽지만 그렇다고 모처럼 조성된 대화의 불씨가 꺼져서도 안 된다. 정부는 확고한 대북 억지력의 토대 위에서 남북 고위급 접촉이 예정대로 열릴 수 있도록 돌발 상황을 잘 관리해야 할 것이다.
#북한#고사총탄#남북 대화#대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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