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경 “공포탄 쏴도 80명이 흉기 휘둘러… 바닥에 실탄 발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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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조업 中선장 총 맞고 사망

전남 목포해경 1508함과 충남 태안해경 1507함 등 경비함 3척은 10일 오전 5시 전북 부안군 왕등도 서쪽 해상에 중국 어선 200척이 몰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1508함 소속 고속단정 2척은 오전 7시 55분 왕등도 서쪽 144km 해상에서 불법 조업을 하던 중국 쌍타망 A어선(120t)을 발견해 1km 정도 추격했다. 권모 경장(39) 등 고속단정 특수기동대원 10명은 오전 8시 7분 쇠꼬챙이가 설치된 A어선에 어렵게 승선했다. 기동대원 5명은 조타실에, 3명은 갑판에, 2명은 좌우 경계를 했다.

권 경장 등이 오전 8시 11분 배 이름이 지워진 A어선을 압송하려 했으나 조타기가 고장 났다. 그 순간 주위에 있던 루룽위 50987호(타망 80t) 등 중국 어선 4척이 멈춰 서 있던 A어선에 접근했고 선원 80여 명이 벌 떼처럼 올라타기 시작했다.

루룽위 50987호 선원 20여 명은 A어선의 오른쪽으로 올라타 기동대원 5명에게 칼, 맥주병 등 흉기를 휘둘렀다. 이어 배모 순경(33) 등의 헬멧을 벗기고 목을 졸랐다. 조타실에 있던 권 경장은 “그만 가라”고 외치며 공포탄을 1발 발사했지만 흉기 저항이 이어졌다.

권 경장 등 3명은 K5 권총 공포탄 3발, 실탄 8발을 허공과 선체 바닥에 잇따라 쐈다. 해경은 소지하고 있던 고무탄 10발을 모두 쐈지만 격렬한 저항이 계속돼 실탄을 발사했다고 밝혔다. 해경이 실탄을 발사하자 중국 선원 80여 명은 A어선에서 달아났다. 권 경장 등 10명도 오전 8시 41분 A어선에서 철수했다.

하지만 오전 8시 55분 도주한 루룽위 50987호에서 ‘선장 쑹모 씨(45)가 총에 맞은 것 같다’고 해경 측에 도움을 요청해 헬기로 이송했으나 숨졌다. 목포한국병원에서 시신을 촬영한 결과 복부에서 총알이 발견됐다. 또 백모 경위(41) 등 기동대원 5명도 흉기에 맞아 부상을 입었다.

목포해경은 11일 루룽위 50987호가 목포항에 압송되면 선원 19명을 상대로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할 방침이다. 목포해경과 광주지검 목포지청은 루룽위 50987호 선원 19명이 공무집행을 방해했는지와 해경의 총기 사용이 적절했는지를 확인할 계획이다. 권 경장은 “팀원들이 죽겠다 싶어 총을 쐈다”고 말했다.

최근 중국 어민들 사이에 세월호 참사 책임으로 한국 해경이 해체될 것이라는 소식이 퍼진 데다 10월 16일부터 금어기가 해제돼 중국 어선들의 불법 조업이 부쩍 늘어나는 추세다. 중국 어민들은 한국 해경의 해체 소식을 크게 반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도 어민단체 대표 10여 명은 7월 초 중국 저장 성 저우산 시의 한 항구 어민회관에서 중국 어민대표 6명을 만나 상호 교류에 대해 논의했다. 행사 도중 중국 어민 3명이 들어와 “한국 해경이 해체되느냐”고 물었다. 이들은 제주도 어민들이 “해경이 해체될 것 같다”고 하자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당시 상황을 목격한 한 제주도 어민은 “중국 어민 3명은 한국 해경 해체를 확인한 뒤 박수를 치며 만세를 외치는 분위기였다”며 “이 장면을 보고 기분이 씁쓸했다”고 말했다. 최근 중국 어민들 사이에서는 ‘한국 해경이 해체돼 단속을 하지 못하는 만큼 어족자원이 풍부한 한국 바다에서 불법 조업을 해도 된다’는 그릇된 정보가 퍼지고 있다.

한국 바다에서 불법 조업에 나선 중국 선원이 해경의 단속에 저항하다가 총탄에 맞아 숨진 것은 2012년 10월에 이어 두 번째다. 해경의 총기사고가 가을철에 집중되는 것은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타망(저인망)을 사용하는 중국 어선에 대한 금어기(4월 16일∼10월 15일)가 매년 10월 16일부터 풀리기 때문이다.

해경은 EEZ 부근에서 불법 조업을 일삼는 중국 어선 단속을 세월호 참사 이전 수준으로 강화하기로 하고 7일부터 특별단속에 들어간 상태였다. 해경은 조직 해체를 앞두고 분위기가 침체된 가운데 총기 사망 사고까지 터지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목포=이형주 peneye09@donga.com /

인천=황금천 기자
#공포탄#목포해경#불법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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