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손성원]한국은 제2의 일본이 될 것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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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경기침체로 일본 ‘잃어버린 20년’ 고통
한국, 일본과는 환경 다르지만 저성장-경상적자 우려 확산
추가 적자예산 편성해 中企 지원, 저금리정책으로 유동성 확대, 노동시장-규제 개혁 지속해야

손성원 객원논설위원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
손성원 객원논설위원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
장기 경기침체가 세계적으로 상당한 우려를 사고 있다.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이라는 고통을 겪었고 유로존은 디플레 우려와 함께 제로 성장에 들어선 상태다. 한국은 일본이나 유로존과 다를 것인가.

다행스럽게도 한국은 다르다. 그러나 한국에선 저성장, 디스인플레이션(인플레이션을 극복하기 위한 경제조정정책), 경상수지 적자로 옮아가는 것 아니냐는 염려가 커지고 있다. 장기 경기침체를 예고하는 고전적인 징후다. 장기 경기침체라는 위험을 줄이기 위해 한국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수요와 공급 두 가지를 관리하는 정책으로 나눠볼 수 있다. 수요관리 정책은 환율정책과 재정확대뿐 아니라 통화정책까지 포함한다. 재정 측면에서 한국은 대내외 부채가 상당하지만 부채 부담은 미국이나 일본보다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장기 경기침체라는 혹독한 대가를 생각한다면 추가적인 적자예산을 통해 예방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돈을 어떻게 쓰느냐는 것이다. 일본에선 ‘쓸모없는 다리’를 만드는 건설 프로젝트에 막대한 재정이 낭비됐다. 한국은 중소기업과 사회정책에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중소기업은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장 낮은 사회지출 국가에 속한다. 적자예산을 생산적인 목적에 투입할 수 있을 것이다.

통화정책은 수요관리 정책에서 중요한 분야다. 미국은 양적완화(QE) 정책을 통해 디플레와 주택경기 침체를 불러온 경기침체에 대응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양적완화 정책을 완전히 배제해서는 안 되겠지만 지금 논의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다만 한국이 ‘저성장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한국은행은 저금리 정책으로 추가적인 유동성 확대를 할 필요가 있다. 유동성 확대는 한국 경제의 거의 모든 부문, 특히 자금 대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에 도움이 될 것이다.

원화가치는 교역 경쟁국인 중국과 일본에 비하면 과대평가됐다. 중국과 일본은 자국의 통화가치 저평가를 위해 수년간 대규모 양적완화 조치를 취해 왔다. 한국이 아무것도 안 한 채 그대로 있다간 경제가 혹독한 대가를 치를 수 있다. 원화 약세가 되면 주요 수혜자는 중소기업이 될 것이다. 중소기업은 일자리 창출뿐 아니라 수출에도 많이 기여할 수 있다. 정부는 한국의 중소기업이 경쟁국인 일본과 중국의 중소기업과 똑같이 경쟁할 수 있도록 공평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수요관리 정책이 단기적으로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공급 측면의 경제정책이 더 중요하다. 양적완화, 재정 확대, 구조적 성장 전략이라는 세 개의 화살을 내세웠던 일본 아베노믹스는 비틀거리고 있다. 정치적인 저항에 부닥쳐 정부가 세 번째 화살 즉, 노동시장 개혁과 규제 개혁이라는 중요한 구조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박근혜 대통령은 불필요한 정부 규제를 철폐하기 위해 청와대에서 두 번이나 고위급 회의를 소집했다. 중요한 것은 박 대통령이 규제 철폐를 자신의 최우선 정책으로 삼고 임기 내내 강조하느냐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규제 철폐를 최우선 정책으로 강조했으나 임기 동안에는 되레 규제를 급속히 늘렸다.

최근 두 명의 교수가 미국 정부의 규제비용을 산출한 연구가 흥미롭다. 미국이 1949년의 (지금보다 훨씬 적은) 정부 규제 수준으로 돌아간다면 GDP는 53조3000억 달러로 현재 미국 GDP 15조1000억 달러보다 3.5배나 많아질 것이라고 추산했다. 가계 평균 수입 또한 27만7000달러로 지금의 5만3000달러의 5배가량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리고 미국 정부는 엄청난 재정적자 대신에 대규모 재정흑자를 누렸을 것으로 교수들은 진단했다.

멍청한 정부 규제일수록 경제를 망치는 법이다. 규제 철폐는 양수겸장의 효과가 기대되는 최선의 방책이다. 경제는 점진적으로 성장할 수 있고, 일자리는 더 많이 창출될 수 있다. 조세수입이 늘어 재정적자도 줄어들 것이다.

확장적 통화정책과 추가적인 적자예산은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 비용과 편익은 서로 맞물려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이 잘못 돌아가 장기 경기침체가 현실화한다면 경제적 비용뿐 아니라 사회적 비용도 엄청나게 커질 우려가 있다.

손성원 객원논설위원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
#경기침체#일본#저성장#경상적자#저금리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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