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숨어있던 ‘끼’ 발산… 브라보 제2인생”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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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아트센터 시니어극단 ‘날 좀 보소’

시니어극단 ‘날 좀 보소’ 단원들이 지난달 25일 서울 강동구 강동아트센터에서 노희경 작가의 작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연습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시니어극단 ‘날 좀 보소’ 단원들이 지난달 25일 서울 강동구 강동아트센터에서 노희경 작가의 작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연습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말을 함부로 해서 사람 기분을 망쳐 놓긴 했어도 그 눈을 쳐다보면 화를 낼 수가 없었어. 키가 좀 작아…. 난 그 남자를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아.”

25일 서울 강동구 동남로 강동아트센터 스튜디오. 둥그렇게 둘러앉은 동료들 가운데에 홀로 선 김형희 씨(56·여)가 이렇게 독백을 하고 있었다.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아”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금방이라도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질 듯한 표정이었다.

원래 배우가 꿈이었느냐고 묻자 “처음에는 대사 읽는 것조차 어색해 1분이 한 시간 같았다”며 고개를 저었다. 김 씨는 “아이들을 다 키우고 나서야 비로소 나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며 “숨어 있던 자아를 드러내면서 일상에 생기가 돈다. 매일 연습시간만 기다린다”며 웃었다.

○ 머리 희끗한 초보 배우들 모여

김 씨는 강동아트센터가 지역주민을 위한 문화사업으로 운영 중인 시니어극단 ‘날 좀 보소’의 배우다. 4월 오디션을 통해 2기 단원 13명이 선발됐다. 배우 이영애 설경구 씨 등을 가르친 신일수 한양대 명예교수(71)로부터 매주 목요일마다 직접 연기를 배운다. 신 교수는 수업 시작하기 10분 전이면 문을 잠가 버릴 정도로 엄한 선생님. 덕분에 관객과 눈을 마주치지도 못했던 단원들이 자유자재로 대사와 제스처를 구사할 정도로 성장했다.

앞으로 연극으로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김영식 씨(60). 그는 “30년간 앞만 보고 돈만 벌었다. 제2인생은 다르게 살아 보고 싶어 신청하게 됐다”며 “연극을 배우면서 무대 울렁증도 사라지고 인생이 재밌어졌다”며 웃었다.

“최근 어릴 적 돈이 없어 혼자 수학여행 못 갔던 기억, 형제처럼 지내던 개 순둥이를 아버지가 몰래 팔았던 기억 등을 모아 시나리오를 썼어요. 노모와 아들, 딸 앞에서 연습을 했더니 다들 눈물을 훔치더군요. 이제는 아버지 하고 싶은 일 하라면서 격려해 주더라고요.”

평생 슬퍼도 참고, 울음도 삼키던 아버지들은 연극에 푹 빠져들었다. 김종철 씨(67)는 “처음에는 쑥스러워 방 안에서 몰래 연습했다. 감정을 스스럼없이 표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처음 느껴 보는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 연극 통해 삶을 되돌아보다

문선희 씨(51)는 아이들 키우면서 연극배우의 꿈을 포기하고 대신 연극 관람을 취미로 삼아 왔다. 단지 연극이 좋아 인천에서 2시간 반이 걸려 수업을 들으러 온다는 문 씨는 “소극장을 찾아다니며 연극을 보고, 연기 수업을 받아 보기도 했지만 늘 목말랐다. 배우로 꼭 데뷔하고 싶다”고 말했다. “손주가 할머니 배우 됐다고 좋아한다”는 정현이 씨(58)의 말에는 모두 공감한다는 듯 손뼉을 치고 웃음을 터뜨렸다.

신 교수는 “연극은 바로 인생 자체다. 연극을 통해 가족들을 위해 희생해 온 아버지, 어머니들이 자기 삶을 되돌아보면서 치유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시니어극단 1기와 2기생은 노희경 작가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강동아트센터 무대에 올렸다. 사별·치매 등 노인 이야기를 직접 동시대 노인들이 진솔하게 보여주니 객석은 울음바다가 됐다. 인생을 오롯이 담은 연극이 주는 힘이다. 올해는 12월 8일부터 3일간 세 차례 공연할 예정이다.

신일수 원장은 “좋은 연극은 ‘도전’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야말로 노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라며 “100세 시대에 남은 삶에 활력을 주는 연극이야말로 진정한 복지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신 교수는 시니어극단과 함께 전국 방방곡곡에 시니어 극단을 만드는 꿈을 꾸고 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강동아트센터#시니어극단#날 좀 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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