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탕삼탕 정책에 찔끔찔끔 규제완화… 외국인들 등돌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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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혁신 ‘골든타임’]<9>꺼져가는 성장동력 불씨를 살려라
투자 꺼려지는 한국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역로 H스퀘어 앞에는 말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표현한 ‘사이버 호스’라는 조형물이 서 있다. 판교테크노밸리에 입주한 수많은 국내 벤처기업은 정부의 정책적 지원만 뒷받침된다면 경제성장의 새로운 주역으로 발돋움할 것으로 예상된다. 성남=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 #1.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취임 3일 만인 7월 19일 첫 현장 방문지로 선택한 기업은 경기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의 시공미디어였다. 이 회사는 2002년 2월 건설업체 시공테크의 콘텐츠 사업본부가 분사해 설립된 디지털콘텐츠 제작업체로 디지털 참고서 ‘아이스크림(i-Scream)’ 등 온라인 교육서비스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미래부 ‘수장’이 이곳을 가장 먼저 찾은 것은 정부가 소프트웨어(SW) 등 지식기반 서비스 산업에 거는 기대를 보여준다. 하지만 정작 시공미디어는 2012년과 지난해 각각 62억 원, 20억 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2. 세계 최대 인터넷기업 구글은 2011년 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현지 데이터센터 후보지를 찾고 있었다. 한국은 기후가 적합하고 전기요금이 싼 데다 냉각수 공급도 용이해 최적지로 꼽혔다. 그러나 그해 9월 구글은 2억 달러를 들여 싱가포르 홍콩 대만 등 3곳에 데이터센터를 짓기로 했다. 한국이 고배를 마신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거론됐지만 그해 5월 경찰이 모바일 광고 애드몹과 관련해 구글코리아에 대해 압수수색에 나선 게 결정타였다는 분석이 있다. 또 당시 지식경제부가 “데이터센터를 유치하면 국내 데이터에 대한 안보를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한 것도 악영향을 끼쳤다. 정부가 ‘안보 논리’를 내세워 데이터센터 운영에 직접 개입할 뜻을 밝힌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

잠재성장률이 바닥으로 떨어진 국내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한 대안으로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핵심 과제는 두 가지다. 새로운 먹을거리의 씨앗을 뿌리는 것과 해외로부터 산업 활성화의 불씨를 가져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부가가치가 높은 신규 산업을 육성하는 한편 적극적으로 외자를 유치해 양질의 일자리를 최대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여주기’식 산업 정책이 여전하고 규제가 뿌리 깊은 한국에서 이를 현실화하기엔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공미디어와 구글 사례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같은 정책만 되풀이하는 정부

동아일보는 경기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와 대전 KAIST 내 창조경제혁신센터에 입주한 신생 SW업체 대표 및 예비창업가 10명에게 국내 SW산업 환경에 대해 물었다. 이들은 최 장관이 7월 19일 첫 현장 방문에서 만났던 미래 SW산업의 주역들이다. 설문 결과 국내 SW산업 환경이 80점 이상이라고 평가한 응답자는 아무도 없었다. ‘70∼79점’이 5명으로 가장 많았고, ‘60∼69점’과 ‘50∼59점’이 2명씩이었다. 한 SW업체 대표는 ‘0∼49점’으로 사실상 낙제점을 줬다.

이들이 이처럼 혹독하게 평가한 이유로는 ‘SW 인재 부족’과 함께 산업 규제, 대기업 위주의 불공정한 거래 관행 등이 꼽혔다. 한 예비창업가는 “정부가 SW 산업을 진정으로 우대하는 정책을 펴야 인재가 몰릴 텐데 기업 수 늘리기에만 급급하다”고 꼬집었다.

7월 17일 미래부 교육부 산업통상자원부 문화체육관광부가 함께 발표한 ‘SW 중심사회 실현 전략’에는 초·중·고등학교의 SW 교육 강화와 SW 인력 처우 개선 등의 대책들이 포함됐다. SW를 다른 산업들의 기반이 되는 전략산업으로 키우겠다는 계획도 담겼다.

문제는 실행 의지다. 미래부는 지난해 10월에도 SW 하도급 폐해 근절, 신규 인력 10만 명 양성, SW 마이스터고 선정 등을 뼈대로 한 ‘SW 혁신전략’을 발표한 바 있다. 9개월이 지나 발표된 SW 중심사회 실현 전략은 대부분 이 내용을 재탕하는 데 그쳤다.

온기운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SW, 교육, 의료 등 지식기반 서비스 산업을 키워야 한다는 얘기는 외환위기 이후 10년이 넘도록 해왔지만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 외국인에게 외면받는 한국


외국인 투자 촉진 정책 역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KOTRA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들의 국내 투자 규모는 145억5000만 달러로 2012년 162억9000만 달러보다 10.7% 줄었다. 반면 국내 기업 및 개인들의 해외 투자 규모는 2012년 280억5000만 달러에서 지난해 294억8000만 달러로 5.1% 늘었다.

전문가들은 외국 자본을 국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촉매제로 쓰려면 보다 과감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수도권정비계획법이 대표적이다. 1990년대 후반 경기 이천시에 테마파크 조성을 추진했던 덴마크의 레고그룹은 이 법 때문에 조성 면적의 10분의 1밖에 확보하지 못하자 투자를 포기했다. 레고그룹은 그 대신 2002년 독일에 테마파크를 개장해 연간 100만 명의 관람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는 “지방 균형발전 등의 논리를 내세워 정치권에서 크게 반발하겠지만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는 데 수도권 규제 완화만큼 효과가 큰 정책은 없다”고 말했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도 “외국인들 중 누가 병원, 대학 등을 지방에 세우고 싶어 하겠나”라며 “투자 유치를 통해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판단된다면 수도권도 과감하게 개방하겠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성 기업노조 또한 외국인 투자를 가로막는 장벽으로 지적됐다. 오 교수는 독일이 2002년 페터 하르츠 폴크스바겐 인사담당이사를 위원장으로 앉혀 노동계와의 대타협을 이뤄낸 ‘하르츠 개혁’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은 통상임금 적용 등으로 비용경쟁력이 점차 떨어지는데 노조까지 걸핏하면 파업을 하려 드니 매력적인 투자처로 보일 리 없다”며 “노사정 대타협을 위한 파격적인 방안을 동원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김창덕 drake007@donga.com·황태호 기자
#국가대혁신#골든타임#성장동력#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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