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승부 칠레 “자랑스레 집에 갈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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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Cup Brasil 2014]
우승후보 브라질과 1-1 대접전
연장후반 막판엔 골대 맞히는 불운… 승부차기 홈팬 응원 부담 끝내 쓴잔
길이 남을 투혼에 세계가 박수… 브라질 기자 “이겼지만 진 기분”

졌지만 잘 싸웠다. 브라질 월드컵에 출전한 칠레 축구대표팀을 두고 하는 이야기다.

#1 “또”―24일 상파울루 경기장

칠레 응원단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칠레는 네덜란드와의 조별리그 B조 3차전에서 0-2로 지며 조 2위가 됐다. 16강에 올랐지만 상대는 개최국 브라질. 가장 피하고 싶었던 상대였다. 칠레에게는 월드컵에서 브라질과 관련한 아픈 역사가 있다. 본선에서 3차례 브라질을 만나 모두 패했다. 1962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 4강에서 브라질에 2-4로 져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1998년과 2010년 대회에서도 16강에서 브라질을 만나 각각 1-4, 0-3으로 패했다. 하필 2010년 패했던 날과 같은 날인 29일 다시 브라질과 16강 길목에서 맞붙게 됐다.

#2 “이번에는”―27일 칠레 훈련장

이전의 칠레와 이번 월드컵에서의 칠레는 달랐다. 칠레는 조별리그에서 우승후보 스페인을 격파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뛰어난 개인기에 조직력까지 갖춰 무서운 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브라질전을 맞아 준비도 철저히 했다. 호르헤 삼파올리 감독은 브라질이 1950년 브라질 월드컵 결승에서 우루과이에 1-2로 패할 때의 영상을 선수들에게 보여줬다. 삼파올리 감독은 “우루과이도 했다. 우리도 할 수 있다”고 독려했다. 4000여 명에 달하는 칠레 응원단은 버스를 타고 5일 만에 브라질에 도착해 응원을 펼치고 있다. 칠레 응원구호 “치치치, 레레레, 비바 칠레”가 시내 곳곳에서 들릴 정도로 응원전을 펼쳤다.

#3 “설마”―29일 미네이랑 경기장

칠레는 벨루오리존치에서 열린 브라질과의 16강전에서 전반 18분 다비드 루이스에게 선제골을 허용했지만 전반 32분 알렉시스 산체스의 동점골로 1-1을 만들었다. 팽팽한 경기가 펼쳐지며 승부는 연장전으로 갔다. 연장 후반 추가시간 칠레의 마우리시오 피니야가 골문을 향해 강하게 중거리슈팅을 날렸다. 골키퍼도 손을 쓰지 못할 정도로 빠른 공이었다. 하지만 공은 골대 위쪽을 강타했다. 경기장을 찾은 5만8000여 명의 팬들 사이에서 아쉬움과 안도의 탄식이 교차했다. 브라질의 루이스 펠리피 스콜라리 감독이 경기 뒤 “운이 좋았다”고 말할 정도로 칠레에게는 아쉬운 순간이었다.

#4 “또”―29일 미네이랑 경기장

승부차기에서 칠레는 고개를 숙였다. 5만4000여 명의 브라질 응원단은 칠레 선수가 키커로 나설 때마다 경기장이 떠나갈 듯한 야유를 보냈다. 심리적으로 흔들린 탓에 3명의 선수가 골을 넣지 못했다. 2-3 패배. 프레스센터에 모인 전 세계 취재진은 명승부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브라질의 승리보다 칠레의 투혼에 감명 받은 분위기였다. 브라질 취재진은 “이겼지만 꼭 진 것 같은 기분이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믹스트존(공동 취재구역)에서 칠레 선수들의 표정은 졌지만 밝았다. 칠레의 마르셀로 디아스는 “졌지만 칠레가 강하다는 것을 전 세계에 보여줬다. 고개를 높이 들고 자랑스럽게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벨루오리존치=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칠레#브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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