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책 vs 책]권력은 설득력… 나눌수록 커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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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서 더 빛나는 리더십과 실수와 실패로 보는 반면교사
◇대통령의 권력/리처드 E 뉴스타트 지음/이병석 옮김/648쪽·3만 원·다빈치
◇위기의 시대 메르켈의 시대/슈테판 코르넬리우스 지음/배명자 옮김/384쪽·1만6000원·책담

‘정부를 궤도에서 이탈시킨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영국 총리 해럴드 맥밀런은 이렇게 대답한 적이 있다. “사건! 사건이죠.”

‘위기의 시대 메르켈의 시대’에 나오는 이 구절은 세월호 참사라는 사건으로 위기에 직면한 박근혜 정부에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설 듯하다. 정권 출범 이후 고공행진을 벌이던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세월호 참사라는 암초에 걸려 하락세로 돌아섰다.

이번 위기를 국가 개조의 기회로 삼겠다는 박 대통령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그것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문제가 잇따르는 것을 보면서 대통령의 리더십 개조부터 필요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

이에 도움이 될 만한 두 권의 책이 나란히 출간됐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부터 로널드 레이건까지 미국 대통령의 리더십을 분석한 ‘대통령의 권력’과 벌써 9년째 독일을 이끌고 있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공인전기 ‘위기의 시대 메르켈의 시대’다.

‘대통령의 권력’은 주로 40년의 세월에 걸친 미국 대통령의 실수와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대통령의 리더십을 논한 정치학술서다. ‘위기의 시대…’는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에서 가장 성공한 총리라는 평가까지 받는 메르켈의 성공 요인을 분석한 전기다. 전자가 미국과 같은 대통령제를 도입한 한국적 시스템에 걸맞은 타산지석의 통찰을 제공한다면 후자는 박 대통령과 닮은꼴 여성 지도자와의 비교를 통한 명철보신의 지혜를 안겨준다.

국회부의장을 지낸 이병석 새누리당 의원이 완역한 ‘대통령의 권력’의 저자는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의 창립자로 공직과 학계를 넘나들며 40년간 정파를 초월해 미국 대통령의 조언자 역할을 했던 리처드 E 뉴스타트(1919∼2003)다. 그는 1960년 초판을 발행한 이 책의 명성으로 케네디부터 클린턴까지 미국 민주당 대통령의 멘토가 됐다. 이 책은 공화당 닉슨 행정부 시절에도 백악관 참모진의 필독서여서 훗날 워터게이트 사건 관련자들이 저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이는 명백한 오독(誤讀)의 산물이다. 현대 대통령의 권력은 대통령의 지위나 결정에 자동 수반되는 것이 아니라 정부에 참여한 수만 명의 공직자와 정치인 그리고 국민을 설득할 수 있을 때 발생한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이런 설득력은 다시 국민과의 소통 능력에서 나온다. 탁월한 소통 능력을 갖췄기에 민주당의 루스벨트와 공화당의 레이건이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여기엔 도덕적 감수성도 수반돼야 한다. 닉슨 행정부는 이를 간과한 채 영향력 확대만 노리다 자멸했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성과를 중시한 이명박 정부와 원칙을 강조하는 박근혜 정부가 간과해온 지점이기도 하다.

지난해 발표된 ‘메르켈의 시대…’를 읽다 보면 박근혜와 메르켈의 공통점부터 눈에 들어온다. 이공계 출신으로 외국어 구사능력이 뛰어나고 인생 전반부가 베일에 싸인 여성 보수정치인. 필요할 땐 싸늘한 침묵으로 상대를 주눅 들게 만드는 얼음공주. 권력게임을 즐기는 남성 정치인과 달리 문제 해결 자체에 집중하는 ‘탈정치적 정치가’….

차이도 있다. 박근혜에겐 ‘한강의 기적’을 일군 아버지라는 든든한 정치적 자산이 있었던 것과 달리 메르켈은 폴란드계 동독 출신으로 생애 대부분을 정치적 아웃사이더로 살았다. 또 박근혜는 일찍부터 여성 정치인으로서 매력에 눈을 떴지만 메르켈은 딱딱한 외모와 패션으로 자주 풍자의 대상이 되는 수모를 겪었다.

중요한 차이는 홀로 심사숙고하는 박근혜와 달리 메르켈은 측근과 열띤 토론을 통해 결론을 도출하기를 즐긴다는 점이다. 박근혜가 원칙을 강조한다면 메르켈은 타협을 중시한다. 박근혜가 작은 것까지 일일이 챙기는 ‘만기친람’ 스타일이라면 메르켈은 측근에게 권한을 위임한다. 무엇보다 집권 이후 잇따라 닥친 세계 경제 위기와 유로존 붕괴 위기에서 더욱 빛을 발한 위기관리 능력으로 역대 어느 독일 총리도 누리지 못한 장기 지지율 상승을 누리고 있다.

두 책을 함께 읽다 보면 지금 박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뚜렷해진다. 소통과 설득, 토론과 협상, 권한의 적절한 분산, 위기가 곧 기회라는 발상의 전환이다. 현대의 유권자라면 누구나 정치인 일반에게 바라는 덕목이기도 하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대통령의 권력#위기의 시대 메르켈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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