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성원]‘박근혜 마케팅’의 유통기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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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 논설위원
박성원 논설위원
6·4지방선거 하루 전날. 부산시내 곳곳에선 새누리당 서병수 후보의 얼굴 대신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이 물결을 이뤘다. 다른 지역에서도 대국민담화 당시 눈물을 흘리는 대통령을 배경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지켜주십시오”라는 피켓을 든 1인 유세가 새누리당의 유일한 선거운동이다시피 했다.

세월호 참사로 참패할 것이라던 새누리당이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8(여) 대 9(야)로 엇비슷한 성적을 낼 수 있었던 데는 ‘박근혜 마케팅’ 덕이 컸다고 새누리당은 자평한다. 이번 선거에서 참패하면 박근혜 정부가 조기 레임덕에 빠질 수 있다는 호소가 먹혔다는 것이다.

하지만 투표 결과를 뜯어보면 박근혜 마케팅은 초박빙 승부 끝에 신승(辛勝)을 거둔 인천 부산 경기 정도에 효과가 한정됐다고 봐야 한다. 수도 서울은 광역 기초 할 것 없이 야당이 휩쓸었다. 지난 대선 때 박 대통령에게 표를 몰아줬던 충청과 강원 지역의 광역단체장도 야당이 휩쓸었다. 여당의 텃밭이던 부산에선 야권후보가 49.3%, 대구에서는 40.3%나 득표했다.

과반의석을 가진 집권여당이 대통령의 치마폭에 매달려 선거를 치르는 전략이 다음 선거에서도 통할까? 취임 1년 3개월 만에 치러진 6·4지방선거와 달리 정권 후반에 치러지는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은 물러날 대통령에 대한 회고적 투표보다는 차기 대선주자들에 대한 전망적 투표가 강할 수밖에 없다.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1∼3위를 새정치민주연합 쪽에서 휩쓸고 있는 현 추세가 지속된다면 새누리당은 정권을 통째로 야당에 헌납하게 될 것이다.

10년 전인 2004년 총선 때 열린우리당은 탄핵소추를 당한 노무현 대통령을 눈물로 옹위하며 ‘대통령을 지켜 달라’고 호소해 과반의석을 얻어냈다. 노무현 마케팅의 유효기간은 거기까지였다. 100년 정당을 자신하며 노무현을 ‘도구’로 내세운 좌파적 정책실험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민심을 잃고는 한나라당에 정권을 내줬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의 공통된 징후는 집권세력 내부에서 최고권력자와 선긋기를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보수 쪽의 김영삼 전 대통령 말기와 진보 쪽의 노무현 전 대통령 말기가 그랬다.

그런데도 새누리당에서는 여전히 대통령만 쳐다보는 무기력한 행태가 되풀이되고 있다. 새 당대표를 뽑는 7·14전당대회 경쟁에서도 박 대통령 마케팅만 보인다. 서청원 의원의 ‘의리냐 배신이냐’는 결국 박 대통령을 지킬 최고의 호위무사가 누구냐는 소리로 들린다. 김무성 의원의 ‘과거냐 미래냐’를 선택하자는 호소도 청와대 개편문제에 이르러서는 “(김기춘 비서실장을) 대통령께서 꼭 필요하다면 우리가 이해를 해드려야 한다”는 허탈한 소리로 귀결된다. 새누리당이 ‘선거의 여왕’에게 의존하는 유아기적 체질에서 벗어나 민심을 바탕으로 정부를 견인하는 ‘책임여당’으로 거듭나는 것은 과연 불가능한 일인가?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는 2011년 4월 5일자 칼럼 ‘박근혜 현상’에서 “권력이 한쪽으로 몰려가고 있다”면서 “국회의원들도 그녀가 어느 길을 택하는지에 관심이 더 크다. 그 길에 줄을 서려고 경쟁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 새누리당이 딱 그 모습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재선 고지에 오른 직후 손수 차를 몰고 부인만 대동한 채 진도 팽목항을 찾아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얘기를 들었다. 혹자는 세련된 언론 플레이라고 폄하할지 모른다. 대통령에게만 의존하는 ‘마마보이 정당’(새누리당 김영우 의원)에선 그런 발상이라도 하는 이가 있는가? 새누리당이 낡은 껍질을 깨고 제3의 길을 찾지 못하면 박근혜 마케팅의 유통기한은 생각보다 빨리 끝날지 모른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
#6·4지방선거#서병수#박근혜#새누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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