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이 꿈틀 움직일리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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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가평군 북한강변 게스트하우스 ‘더 벡터’

경기 가평군 설악면 국도에서 북한강 쪽으로 깎아지른 듯한 비탈길에 들어선 게스트하우스 ‘더 벡터’. 비대칭적인 바람개비 모양의 디자인 덕분에 육중한 노출 콘크리트 건물임에도 바람이 불면 움직일 듯 역동적인 인상을 준다. 남궁선 사진작가 제공
경기 가평군 설악면 국도에서 북한강 쪽으로 깎아지른 듯한 비탈길에 들어선 게스트하우스 ‘더 벡터’. 비대칭적인 바람개비 모양의 디자인 덕분에 육중한 노출 콘크리트 건물임에도 바람이 불면 움직일 듯 역동적인 인상을 준다. 남궁선 사진작가 제공
건물이 움직일 리 없다.

그런데 ‘더 벡터(The Vector·방향)’는 묵직한 노출콘크리트 덩어리임에도 날이 풀리면 얼음이 녹듯 꿈틀댈 듯하다. 이 비현실적인 운동감의 비밀은 디자인에 있다. 비스듬히 기울어 있는 세로축과 가로축을 중심으로 4개의 콘크리트 덩어리가 바람개비 모양을 이루는데 미묘하게 뒤틀린 채 비대칭을 이루고 있어 바람개비 끝을 툭 건드리면 회전을 시작할 듯 생동감을 준다. 이름도 사방으로 뻗어있다는 뜻에서 지은 것이다.

경기 가평군 북한강변에 서북향으로 앉은 게스트하우스 더 벡터는 일상에서 벗어난 사람들에게 비일상적인 즐거움을 주는 ‘노는 건축’이다. 지하 2층, 지상 2층, 총면적이 504.87m²(약 153평)인데 국도에서 15m 아래의 강가로 내려가는 가파른 비탈길에 들어서 있어 멀리서 보면 절벽에 바람개비가 박혀 있는 듯한 모양이다.

커다란 창 밖으로 보이는 것은 호명산을 배경으로 펼쳐진 북한강이다. “북한강이 곧 집 마당이 되는 셈이죠. 일상에서 벗어나 쉬면서 재충전하려는 사람들에게 가장 호사스러운 공간이 자연과 가까이 있는 집 아닐까요?”(최철수 초이건축 대표·48·사진)

건축주인 니콜라스 전은 “강물만 감상하고 있어도 하루 종일 지루하지 않다“고 했다. “아침에 해가 뜨면 창에 하얗게 끼어있던 성애가 녹으면서 강물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옵니다. 밤엔 물 위로 별이 쏟아져 내리지요. 강물이 얼어붙는 소리와 얼음이 서서히 녹으면서 내는 소리, 그 소릴 들으며 개가 컹컹 짖는 소리까지 심심할 틈이 없어요.”

벽난로가 있는 ‘더 벡터’의 3층 거실. 서북향의 거실 창으로 북한강과 건너편의 호명산이 그림처럼 들어온다.
벽난로가 있는 ‘더 벡터’의 3층 거실. 서북향의 거실 창으로 북한강과 건너편의 호명산이 그림처럼 들어온다.
건물 안의 공간 경험도 비일상적이다. 현관으로 들어서면 거기가 벌써 4층이다. 층을 막아놓지 않아 뻥 뚫린 공간을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3층, 2층, 1층이 차례로 나온다. ‘1층엔 거실, 2층은 침실’처럼 수평으로 공간의 용도를 구분하는 관행도 깼다. 세로축에 주방, 거실, 바가 있는 놀이방을 배치하고 2, 3층에 걸쳐 있는 가로축에 침실 3개를 두었다. 건물의 중심에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공용 공간을, 건물 끝에 개인 침실을 둔 것은 동선을 따져도 꽤나 효율적인 배치다.

강가에 바짝 붙여 서북향의 집을 지으려면 채광과 습기 대책이 필요하다. 최 대표는 건물 뒤쪽 창으로 빛이 들어오는 남쪽에 성큰가든을 두었고, 통풍이 되도록 전 층을 뚫어놓았다. 완성도가 높은 건축물과 달리 배경이 되는 조경이 거칠게 마무리돼 바람개비 모양이 제대로 살아나지 않은 점은 아쉽다.

최 대표는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어려서부터 베트남 일본 우루과이 스위스 미국을 오가며 살았다. 외양과 인테리어 모두 “똑같은 구석이 하나도 없는 집들을 돌며 놀던 기억이 좋아” 집 짓는 일을 업으로 삼게 됐다. 그래서인지 그는 조형성이 강한 건축 작업을 해왔다. “우리 건축은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죠. 어딘가 경직되고 딱 맞아떨어져야 하는 스타일은 우리와는 맞지 않아요. 부드럽고 풍부한 한국적인 감성이 담긴 건축을 하고 싶습니다.”

가평=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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