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기관사 가족의 만남 “열차타고 꼭 다시 올게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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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만에 남북 이산상봉]
이산상봉 행사 첫날 이모저모

헤어졌던 혈육이 만나는 이산가족 상봉장에서 ‘의형제’를 맺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20일 이산가족 단체상봉장인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최남순 씨(64)는 북측에서 온 ‘이복동생’ 최덕순(55·여) 경찬(52) 경철 씨(45)를 만났지만 허탈감을 감출 수 없었다. 이들이 가져온 아버지의 사진을 아무리 봐도 6·25전쟁 때 납북된 자신의 아버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시대를 잘못 만나 그런 것이니 의형제라 생각하고 상봉행사가 끝날 때까지 같이 만나자”고 제안했다. 이 제안에 동생들 모두 “예, 예”를 연발하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와 관련해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북측 당국과 함께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북 기관사 가족’도 화제였다. 장춘 씨(81)는 아들 기웅 씨를 데리고 북측 여동생 장금순 씨(75)와 남동생 화춘 씨(72)를 만났다. 장화춘 씨는 기웅 씨의 직업이 열차 기관사인 걸 알게 되자 “정말이니? 내가 47년 6개월 동안 기관사를 했다”고 말했다. 장금순 씨는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남측) 오빠 생각이 났다”며 울먹였다. 이에 기웅 씨는 “제가 열차 타고 꼭 다시 올 테니 그때까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라고 말했다.

혈육을 눈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하는 안타까운 장면도 있었다. 6·25전쟁 때 남편과 남으로 내려온 이영실 씨(88)는 치매를 앓고 있어 북측에서 온 여동생 정실 씨(85)와 딸 동명숙 씨(67), 시누이 동선애 씨(76)를 알아보지 못했다. 동명숙 씨가 “엄마랑 나랑 서로 보고 싶어서 찾았잖아요”라고 해도 이영실 씨는 “그래요?”라는 대답만 반복했다. 하지만 그 눈시울은 붉어져 있었다.

북한 가족의 체제 찬양은 이번 상봉장에서도 빠지지 않았다. 북에 사는 여동생들을 만나자마자 부둥켜안고 우는 김철림 씨(94)에게 동생들은 “오빠 만난다고 하니 신발이랑 내의를 다 장군님께서 마련해 주셨다”고 말했다. 1·4후퇴 때 아버지와 형제들을 북에 두고 온 유선비 씨(80·여)를 만난 조카 유기정 씨(73)는 주변에서도 들릴 정도의 큰 소리로 “금강산(관광)이 잘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강원 속초를 출발해 금강산 온정각에 도착한 남측 상봉 대상자 82명과 동반가족 58명을 처음 맞은 것은 함박눈이었다. 최근 금강산에는 총 230cm의 눈이 쌓였다. 숙소이자 상봉 장소인 금강산호텔과 외금강호텔은 북한이 2010년 4월 금강산 시설을 동결·몰수한 이후 관리가 소홀한 탓인지 건물 곳곳의 페인트칠이 벗겨져 있었다.

정성택 neone@donga.com·권오혁 기자

금강산=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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