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책]17세 소년 성장기… 대만판 ‘호밀밭의 파수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8일 03시 00분


코멘트

◇모텔의 도시/장징훙 지음·허유영 옮김/420쪽·1만1800원·사계절

대만 중서부의 유서 깊은 도시 타이중. 열일곱 살 고교생 우지룬에게 역사와 문화의 향기가 넘치는 이곳이 천국 같다. 우지룬은 지금 지옥에 있으니까.

우지룬에게 학교는 지옥이다. 한국처럼 고등학교는 입시가 전부다. 명문대 진학률을 높이기 위해 선생님들은 눈이 벌겋다. 하지만 이것도 가짜다. 한 선생님이 비유했듯이 퍼스트, 비즈니스, 이코노미 클래스처럼 아이들이 갈 수 있는 대학은 이미 정해져 있다. 공부 못 하는 학생은 들러리다. 잉여가 된 학생은 ‘책상에 푹 고꾸라져 침을 바닥에 질질 흘리고 곯아떨어져 있다’거나 ‘양말을 벗고 발바닥의 각질을 뜯어 내는 데 온몸의 신경을 집중’한다.

무협소설로 마음을 달래던 우지룬은 결국 튕겨져 나온다. 그는 학교보다 훨씬 아름답다고 여기는 도시로 뛰어든다. 학교를 자퇴한 우지룬은 밥벌이가 급하다. 엄마 얼굴은 본 적도 없고 아버지도 아홉 살 때 사고로 잃었다. 큰아버지의 보살핌을 받던 그는 독립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그의 선택은 모텔 카운터를 보는 일. 첫 직장이 마음에 든다. 모텔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도 재밌고, 혼자 생각할 시간도 많아 좋다. 짙게 틴팅(선팅)을 한 외제차를 타고 은밀한 의식을 치르러 오는 듯한 남녀를 객실로 안내하는 것도 짜릿하다. 하지만 일자리를 소개해 준 친구 아카오의 주변 인물들을 알게 되면서 우지룬은 세상을 알게 된다. 조직폭력배와 정치인이 얽혀 있는 세상의 민낯을 말이다.

대만의 현직 고교 교사인 저자는 학교 풍경과 사회 현실을 절묘하게 직조해 글을 풀어 놓는다. 고교생의 눈에 비친 위선으로 가득 찬 사회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큰아버지의 따뜻한 배려 속에 중심을 잡는 우지룬의 모습에서 희망을 본다.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본 거친 세상에 대한 묘사로 대만 판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불리는 청소년 소설. 2007년 대만 주거(九歌)출판사가 200만 대만달러(약 7100만 원)의 상금을 내건 주거문학상 1회 수상작이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모텔의 도시#대만#우지룬#사회 현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