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세계는 자수성가 부자, 한국은 상속형 부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7일 03시 00분


자수성가(自手成家)한 1세대 기업인들의 삶은 감동을 준다. 어려운 여건을 뚫고 한국 굴지의 대기업을 일궈낸 삼성의 이병철, 현대의 정주영, LG의 구인회 창업자 같은 ‘기업 영웅’의 신화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 빛난다.

미국의 미디어그룹 블룸버그가 발표한 올해 세계 200대 부자(富者) 순위를 보면 자기 힘으로 재산을 일군 자수성가형 부자가 139명(69.5%)인 반면, 부모에게 재산을 물려받은 상속형 부자는 61명(30.5%)에 그쳤다. 1위를 차지한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를 비롯해 상위 10명 가운데 9명이 자수성가 부자다. 도전과 혁신의 풍토가 강한 미국이 7명이고 멕시코 스페인 스웨덴 국적이 각각 한 명이다.

200위 안에 들어간 한국 기업인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108위)과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194위) 등 두 명에 그쳤다. 중국은 6명이었고 일본은 3명이었다. 중국과 일본 기업인은 모두 자수성가형인 반면 한국 기업인은 상속형으로 분류됐다. 국내 상장기업 보유주식 평가액이 1조 원을 넘는 16명 중에서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을 제외한 15명이 재벌가문 2, 3세이거나 그 배우자라는 점도 ‘개천에서 용 나기 어려워진 현실’을 반영한다.

창업보다 어렵다는 수성(守成)에 성공한 이건희 정몽구 회장을 단순히 ‘부모 잘 만난 덕분’이라고 폄훼하는 것은 균형 잡힌 시각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이 자본주의 역사가 오래된 미국이나 일본보다 자수성가 부자가 적은 것은 우려스럽다. 한국 경제의 활력과 역동성이 떨어지고, 과거와 달리 계층 이동이 쉽지 않은 사회적 구조가 굳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회경제적 배경이 교육 일자리 수입의 격차로 이어지게 되면 내부 갈등과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외교안보전문지 ‘포린어페어스’ 최근호는 한국 경제의 불평등 문제를 지적하며 “빈부격차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2017년에 중도좌파가 정권을 잡을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성장을 발목 잡는 포퓰리즘에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사회안전망 확충과 규제 개혁으로 계층 간 이동성을 높여야 한다. 자수성가 부자가 늘어나려면 창업을 통한 도전과 기업가 정신을 격려하는 사회적인 분위기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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