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연구소로 간 美 ‘경제대통령’… 한국의 퇴임 공직자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5일 03시 00분


2006년부터 8년간 미국 중앙은행을 이끈 벤 버냉키 전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이 3일 워싱턴의 브루킹스연구소 상근 연구위원으로 취직해 제2의 인생을 설계한다. 버냉키는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담당하는 연구소 내 허치슨센터에 사무실을 두고 ‘미국의 경제대통령’으로 불리는 연준 수장(首長) 경험을 책으로 펴낼 계획이다. 글로벌 싱크탱크 경쟁력 순위에서 1위로 꼽히는 브루킹스는 진보적인 사회과학연구소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 성향과 가까운 편이다.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였던 버냉키가 퇴임 후 연구소를 택한 것을 미국에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장차관급 고위직을 지낸 뒤 싱크탱크로 옮기는 일도 적지 않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국장을 지낸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는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한국석좌를 맡고 있다. 정책 경험을 바탕으로 저술과 강연을 하면서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정책에도 조언한다. 공화당 출신의 짐 드민트 전 상원의원(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은 지난해 보수 성향의 헤리티지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싱크탱크에서 활동한 전직 관료나 백악관 참모들이 정권이 바뀌어 다시 백악관이나 행정부에 중용되는 경우도 꽤 있다.

미국에는 우수한 싱크탱크가 많아 정부→싱크탱크→정부로 이어지는 회전문 인사를 해도 언론들이 크게 비판하지 않는다. 되레 싱크탱크에서 연구한 경험을 높이 산다. 우리도 장관을 지낸 전직 관료들이 연구소에 둥지를 트는 경우가 늘고 있다. 정덕구 전 산업자원부 장관은 2007년부터 니어(NEAR)재단을 이끌고 있고 이상희 전 국방부장관은 한국전략문제연구소(KRIS) 소장을 맡고 있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서울 여의도에 윤연구소를 설립했다. 천영우 전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은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연구한다.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은 헤리티지재단 연구위원이다.

그러나 아직도 장차관을 지낸 고위 관료들이 로펌으로 직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전관예우’ 연봉을 받으면서 로비스트 역할로 현직의 후배들에게 부담을 주기도 한다. 미국처럼 싱크탱크가 많지 않은 탓도 있겠다. 전직 공직자들이 정책에 기여할 수 있는 인프라를 정착시킨다면 풍토가 달라질 수 있다. 공직윤리가 절실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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