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리포트]“택시에 유아 카시트 의무화”… 현실 동떨어진 규제 양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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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규제’ 쏟아내는 의원입법

동아일보가 19대 국회 경제 관련 상임위 5곳에서 국회의원이 발의한 규제 법안의 입법검토보고서를 살펴본 결과,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탁상공론’식 입법은 물론 헌법이나 국제 통상규범에 어긋나 통상 마찰이 일어날 우려가 있는 법안이 상당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입법검토보고서는 국회사무처 소속 입법조사관과 전문위원이 해당 법안의 필요성과 타당성, 헌법과 각종 법률에 위반되는지 등을 검토해 작성한다.

○ 현실 무시한 법

새누리당 김기선 의원은 버스 및 택시에 유아용 카시트를 의무적으로 비치하도록 하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에 대해 입법검토보고서는 “택시에 카시트를 비치하기 위해 앞·뒷좌석 또는 트렁크 공간을 할애하면 4인 이상의 승객이 한 차량에 탑승하지 못하거나 짐이 많은 승객이 트렁크를 이용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유아를 보호한다는 법 취지는 좋지만 현실을 감안하지 못한 입법인 것이다.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관계자는 “택시는 차량 트렁크에 액화석유가스(LPG) 탱크가 장착돼 있어 카시트를 넣기 힘들다”며 “좌석 하나를 비워 카시트를 고정 설치해야 한다는 말인데 유아가 택시를 타봤자 얼마나 타겠나. 전형적인 포퓰리즘적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신계륜 의원이 발의한 ‘공인중개사의 업무 및 부동산거래신고법’ 개정안은 중개 대상 주택에 공인중개사가 출입하려면 반드시 거주자의 허락을 받아야 하며 이를 위반하면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도록 하고 있다. 입법검토보고서는 “주택 거주자의 사생활 침해를 예방하기 위한 이 법안은 자칫 세를 살고 있는 거주자가 악의적으로 주택 출입 동의를 거절하면 주택 거래 자체가 불가능해진다”고 지적했다. 공인중개사협회에선 이 법안이 발의되자 “현실성과 실효성이 떨어지며 정당한 중개 업무를 과도하게 규제하는 법”이라고 항의하기도 했다.

새누리당 이상일 의원이 발의한 주차장법 개정안 역시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 법안은 모든 주차장에 ‘차량 멈춤턱’을 의무적으로 설치하고 위반 시 영업정지 또는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입법검토보고서는 “차량 멈춤턱 설치는 바닥이 시멘트나 콘크리트 등으로 된 주차장만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빈 공터에 만들어진 주차장에는 설치할 수 없고 도로상이나 이면도로의 노상주차장 같은 곳에선 멈춤턱을 설치하면 오히려 주행 차량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다.

○ 헌법이나 FTA에 맞지 않는 법안

민주당이 당론으로 발의한 대중소기업상생법은 대기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진출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대기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진출하면 강제로 사업을 내놓게 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현재는 동반성장위원회가 민간 자율로 적합업종을 지정·운영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입법검토보고서는 “대기업의 진출금지 법제화는 재산권 행사 또는 영업의 자유에 과도한 제한이 있다는 우려가 있다”며 “민간 기업에 강제로 사업을 이양하도록 하는 조항은 법리적으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헌법 23조에는 ‘공공 필요에 따라 재산권을 제한할 때는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돼 있다.

새누리당 조현룡 의원은 외국인이나 외국법인의 국적항공사 지분 보유 한도를 현행 50% 미만에서 25% 미만으로 강화하는 내용의 항공법 개정안을 냈다. 조 의원은 “외국자본이 국가 기간산업인 항공운송산업을 지배하는 것을 막고 취약한 국내 항공산업을 보호하겠다는 것”이라고 발의 취지를 밝혔다.

하지만 입법검토보고서는 “항공운송사업자의 외국인 지분은 자유무역협정(FTA) 부속서 상에 이미 기재돼 있어 ‘자유화후퇴방지’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행 한미 FTA에서는 외국인의 지분보유 한도를 포함한 항공법의 제한규정에 대해 현행 규정보다 강화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자유화를 유보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도 “외국인 지분 한도를 낮추는 것은 FTA에 위배될 가능성이 있어 법 개정은 힘들다”고 말했다.

○ 연구·조사 없이 법부터 발의

보수 성향 시민단체인 ‘바른사회시민회의’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13년 8월 말까지 헌법불합치·위헌으로 결정된 법 조항을 분석한 결과 경제 관련 법안은 총 152건이었다. 이 중 36건이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안이다.

질 낮은 규제법안이 양산되는 가장 큰 원인은 법안을 발의하기 전 조사나 연구 없이 일단 발의부터 하고 보자는 일부 의원의 행태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8대 국회의원을 지낸 조전혁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법이라는 게 한번 만들어지면 전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영향을 미치는데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얼마나 투철한 소명의식을 갖고 입법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박진우 기자 pjw@donga.com
최선호 인턴기자 경희대 영미어학부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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