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노무현 아닌 송강호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1일 20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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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변호인’ 대박은 송강호의 성공… 노무현은 영화 속 송우석과 딴 인물
영화 밖에서 검증돼야 할 釜林사건… 피의자들이 검사까지 意識化 시도
당시 재판장 左편향 판결 공개반성
“영화판이 좌파의 陣地 됐다” 한탄만 하는 것은 의미 없는 넋두리

배인준 주필
배인준 주필
영화 ‘변호인’이 관객 1000만 명을 돌파한 뒤 나는, 영화평을 잘 쓰는 이승재 기자(동아일보 ‘이승재의 무비홀릭’ 필자)에게 “왜 대박인가”라고 물어보았다. 이 기자는 “명작은 아니고 유치한 구석도 있지만 상당히 잘 만들었고 재미있는 영화”라면서 “송강호 연기가 첫째”라고 했다. 그리고 섬뜩하게 악역 연기를 한 곽도원,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임시완 등의 캐릭터가 잘 받쳐주었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첫머리에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허구임을 알려드립니다’라고 밝힌다. 실화라는 것은 1980년대 초 부산지역 대학가의 이른바 ‘부림(釜林)사건’을 말한다. 그러나 정확히 무엇이 실화인지는 논란이 있다. 이 사건을 두고 ‘부산지역 사상 최대의 용공(容共)조작 사건’이라는 것과 ‘공산주의 건설을 위한 명백한 의식화(意識化)교육 사건’이라는 것으로 엇갈린다. 영화는 용공조작 사건이라는 관점과 믿음에 입각해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허구를 만드는 것은 창작의 자유이지만 이 영화는 사회적 합의가 상당히 이루어진 실화가 아니라 논란이 있는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 아니면, 새삼 논란을 만들려는 제작 의도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송강호가 연기한 주인공(송우석)의 모델은 부림사건 변호사로 참여했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생전의 노 대통령은 회고 글에 “피의자들은 부림사건 와중에서도 노동 착취 등 자본주의의 모순을 (변호사와 판검사 등에게) 이해시키려고 노력했고, (나는) 그들에게 감명 받아 그들의 관심사에 차츰 눈을 뜨게 되었다”고 썼다. 일각에서는 ‘부림사건 피의자들이 변호사 노무현을 좌경 의식화시켰고, 그것이 노무현 정치의 뿌리를 형성했다’고 풀이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청와대 등에 부림사건 관련 인맥이 일부 포진해 국가사회에 영향을 미쳤다.

당시의 한 수사검사였던 고영주 변호사는 어제 필자에게 “부림사건의 성격은 영화에서 묘사되었다는 내용과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고 변호사는 “1980년대 초 대학가에는 공산주의 혁명노선을 공부하는 그룹이 많이 생겼는데 부림 조직도 그 하나”라면서 “노무현은 인권변호사가 아니라 공산주의를 변호한 것밖에 안 된다”고 규정했다. “노 정부 때 과거사진상위원회와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에서 진짜 간첩행위를 한 사람들까지 민주화 인사로 만든 판에 그들 주장대로 부림사건이 정말 고문으로 조작된 용공사건이었다면 재심에서 유죄가 유지되었겠습니까?”

부산지법 형사항소3부는 2009년 이 사건 재심 판결에서 계엄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 판단을 유지했다. 그러나 유죄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포함해 사건 전체에 대해 다시 재심 결정이 내려져 다음 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 ‘변호인’이 제작되고 상영되어 반향을 만들어냈다.

1980년대 당시 부림사건 일부 피고인에 대한 1심 재판장이었던 서석구 변호사는 자신이 피고인들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 서 재판장의 판결은 그때로서는 2심에서 유죄로 바뀌었고, 3심에서 유죄로 확정되었다. 그는 “편협한 독서 때문에 나 자신이 좌경 의식화되어 잘못된 판단을 했다”면서 “무죄 판결의 결과가 국가안보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에 도움을 준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감마저 들었다”고 말했다. 서 변호사는 “나의 후회와 반성, 뒤늦은 깨달음에 대한 고백을 더 많은 국민에게 알리고 싶다”고 어제 필자와의 통화에서 덧붙였다.

이 시점에서 ‘영화판이 좌파의 진지(陣地)’라고 개탄만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어느 영화 관계자는 “상업영화는 돈의 게임이라, 성공하는 영화를 지향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가 좌편향이라면 좌편향인 셈”이라고 말한다. 사실 이 영화는 전형적인 상업영화이다. 미국 할리우드 영화와 똑같이 선(善)은 극단적으로 선하게, 악(惡)은 극단적으로 악하게 그린다. 이런 신파적 구도로는 복잡한 진실과 그 인과(因果)를 담을 수 없다. 제작사는 허구라고 밝혔지만 형식적인 발뺌의 장치일 뿐이다. 상당수 관객은 허구를 포함해 다 실화라고 믿거나 착각한다. 영화사도 관객들의 이런 동일시를 염두에 두지 않고는 영화를 찍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진짜 노무현은 영화 속에 있지 않다. 노무현은 2009년 5월 23일 부엉이바위의 비극에 이르기까지 국민과 세계가 현실 속에서 보아온 그 인물이다.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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