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어디나 통하는 황금비자를 팝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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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스페인 등 재정위기 국가, 투자이민 유치 열풍

중국의 한 사업가(35)는 최근 포르투갈 벤피카 FC의 홈구장 ‘이스타디우 다 루스’가 바라보이는 현대식 아파트를 50만 유로(약 7억2000만 원)에 구입해 아내와 아들과 함께 입주했다. 그는 “이 돈으로 중국 베이징이나 상하이에서는 60m² 크기의 방 2개짜리 집밖에 살 수 없지만 포르투갈에서는 그보다 두 배 큰 면적에 방 4개짜리를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포르투갈 이민을 택한 가장 큰 이유는 “중국의 자녀 교육 시스템이 너무 경쟁을 부추겨” 아이들을 외국의 영어학교에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2012년 10월부터 포르투갈 정부가 실시한 ‘황금 비자’ 정책은 그가 이민 결심을 굳힌 방아쇠였다. 이 정책에 따르면 50만 유로 이상 부동산에 투자한 포르투갈 이민자는 5년간 ‘유럽의 시민’으로서 26개 솅겐협정(유럽 국가들 간의 국경 개방 조약) 가입국을 자유롭게 여행하고 사업을 할 수 있다.

황금 비자 정책은 2011년 유럽 재정위기의 여파로 포르투갈이 구제금융을 받은 이후 부동산 가격이 3분의 1이나 폭락한 시점에서 부동산 활성화를 위해 나왔다. 재정위기 이후 외국인 부유층의 투자이민 확대 정책은 스페인 그리스 키프로스 라트비아 영국 헝가리 등 전 유럽으로 퍼지고 있다. 이 비자를 받기 위한 최소 투자액은 △영국 100만 파운드(약 17억 2800만 원) △라트비아 15만 유로 △포르투갈, 스페인 50만 유로 △키프로스 30만 유로 △그리스 25만 유로 등 약간씩 차이가 있고 EU 임시 거주기간도 3년 혹은 5년 등으로 다르다. 그렇지만 ‘EU 시민권’을 돈을 주고 판다는 틀은 같다. 가난한 아프리카 출신 난민들이 해상에서 불법 이민을 시도하다 목숨을 잃는 현실과는 대비된다.

포르투갈 정부는 5년간 부동산을 보유한 외국인들에게 영주권을, 그 후 1년 뒤에 시민권도 준다. 그렇다고 굳이 포르투갈에 살지 않아도 된다. 1년에 7∼14일만 포르투갈에 거주하면 충분하다. 영국에서도 영국 국채, 회사채, 주식 등에 100만 파운드 이상 투자한 외국인은 5년 안에, 500만 파운드나 1000만 파운드를 투자하면 각각 3년, 2년 안에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 키프로스에서는 500만 유로 이상을 투자하면 즉시 영구비자를 발급해주는 ‘급행 시민권’ 제도도 운영한다.

최근 포르투갈 외교부에 따르면 현재까지 황금 비자를 발급 받은 외국인 부동산 투자자는 총 356명. 이들은 2억2200만 유로를 포르투갈에 투자했다. 또 현재 추가로 300건의 비자신청서가 접수됐으며 그 투자액은 6억 유로에 이른다. 비자를 발급 받은 사람들의 국적은 중국 브라질 러시아 앙골라 순이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황금 비자가 중국인들의 유럽 진출의 열쇠가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포르투갈 부동산 회사와 계약을 맺고 중국인 투자자를 모집하는 얀시 쑤 씨(34)는 “두 달간 주택 7채를 팔았다”고 말했다. 그는 “카스카이스의 수영장 딸린 집, 리스본의 ‘샹젤리제’로 불리는 리베르다드 거리의 사무실 등은 가격도 묻지 않고 팔린다”고 말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유럽의 경제 상황이 크게 변하지 않는 이상 ‘EU 시민권 판매’ 경쟁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유럽#투자 이민#포르투갈#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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