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金의 굴욕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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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돌로 반지를 만들어?” 신문을 들여다보던 초등학생 아들이 묻는다. 귀한 돌, 즉 보석으로는 반지를 만들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왜 돌로 만든 반지가 17만 원이야?” 그제야 질문의 뜻을 간파한 나는 첫 생일을 ‘돌’이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돌반지의 거래가 늘어난다는 소식에 금값 하락을 실감한다.

▷금값은 2011년이 절정이었다. 온스당 3000달러를 예상하는 전문가도 있었다. 그때 한 돈(3.75g)짜리 돌반지는 세공비와 부가가치세를 합쳐 25만 원이나 됐다. 돌반지 구매자가 끊기자 반 돈으로 만든 반 돈 반지, 반의 반 돈 반지까지 등장했다. 골드바는 유망한 재테크 수단이었다. 금 좋아하기로 유명한 중국과 인도는 전 세계의 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었다. 금값이 너무 비싸지자 경고등이 켜졌고, 투자의 달인 조지 소로스가 보유한 금을 팔아 치우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그렇지 않아도 올 들어 하락세를 이어 가던 금값이 미국의 양적 완화 축소로 결정타를 맞았다. 그제 뉴욕상업거래소에서 내년 2월 인도분 금 선물 가격이 전날보다 3.4% 빠진 온스당 1193.60달러를 기록해 심리적 마지노선인 1200달러가 붕괴됐다. 이는 2010년 8월 이후 가장 낮은 가격이다. 경기가 좋아지면 금값이 하락하는 이유는 불황기 안전 자산으로서 금의 투자 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다고 했던가. 금값 하락에 밤잠을 못 이루는 이들도 있다. 뒤늦게 금 열풍에 뛰어든 투자자들이다. 펀드평가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달 말 현재 설정액 10억 원 이상 금 펀드 10개의 연초 이후 수익률은 ―30.09%를 기록했다. 소중히 키우던 황금돼지가 애물단지가 된 꼴이다. 내년 금값 전망은 엇갈린다. 기복은 있겠지만 중국과 인도의 탄탄한 수요가 있는 한 반등할 것이란 전망도 있고 하락세가 이어질 것이란 분석도 있다. 지금 굴욕을 맛보고 있지만 금은 여전히 사람을 매혹하는 그 무엇을 갖고 있다. 견금여석(見金如石),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 그거 아무나 못 한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금값 하락#돌반지#불황기#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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