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맹구’가 ‘채천재’로 거듭날 때, 그의 곁엔 ‘오른손 장효조’ 있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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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채태인과 강기웅 코치

‘맹구’와 ‘천재’ 사이를 오가던 삼성 내야수 채태인(왼쪽)은 ‘원조 천재’ 강기웅 2군 타격코치를 만난 뒤 야구에 새롭게 눈을 떴다. 강 코치는 “지금의 페이스를 잘 유지한다면 태인이는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거포가 될 수 있다”고 장담했다. 삼성 제공
‘맹구’와 ‘천재’ 사이를 오가던 삼성 내야수 채태인(왼쪽)은 ‘원조 천재’ 강기웅 2군 타격코치를 만난 뒤 야구에 새롭게 눈을 떴다. 강 코치는 “지금의 페이스를 잘 유지한다면 태인이는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거포가 될 수 있다”고 장담했다. 삼성 제공
삼성 내야수 채태인(31)에게는 두 개의 별명이 있다. 하나는 ‘맹구’, 또 하나는 ‘천재’다. 큰 눈을 가진 그는 종종 눈을 더 크게 치켜뜨곤 하는데 이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보여 맹구란 별명을 얻었다. 맹구 소리를 들을 만한 행동도 했다. 2011년 1루 주자로 나갔다가 후속 타자의 안타 때 그라운드를 가로질러 3루로 달려가 ‘채럼버스(채태인+콜럼버스)’로 불렸다. 지난해에는 1루수로 평범한 땅볼을 잡은 뒤 늑장을 부리다 타자 주자를 살려줘 팬들을 경악하게 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한 천재성을 드러낸 것도 여러 번이다. 올해 어깨 부상으로 규정 타석을 채우지는 못했지만 94경기에 출장해 타율 0.381에 11홈런, 53타점을 기록했다. 타격왕 LG 이병규의 타율(0.348)보다 월등히 높았다. 한국시리즈에서는 5차전 선제 솔로 홈런에 이어 6차전에서 두산 에이스 니퍼트를 상대로 역전 2점 결승 홈런을 때려냈다. ‘채천재’의 화려한 귀환이었다.

○ 메이저리거 꿈꾸다 사회인 야구로 추락

‘국민 타자’ 이승엽(삼성)과 ‘빅보이’ 이대호(전 오릭스)는 입단 때 모두 투수였다. 이들은 타자로 변신해 한국 야구사에 한 획을 긋는 거포가 됐다.

채태인도 부산상고 시절 뛰어난 투수였다. 2001년 고교 졸업 후 80만 달러를 받고 미국 메이저리그 보스턴에 입단할 정도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해 어깨 수술을 받았고 끝내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했다.

미국과 호주 등을 전전하다 2005년 한국에 돌아와 공익근무요원을 마친 그는 야구를 계속 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깨가 아파 공을 던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게 타자였다. 주말에는 사회인 야구팀인 브롱크스에서 뛰었다. 채태인은 “고등학교 때부터 프리배팅은 자신 있었다. 이후 삼성에서 테스트를 봤는데 그때 구단이 잘 봐주신 것 같다”고 했다. 채태인은 2007년 해외파 특별 지명을 통해 삼성에 입단했고, 그해 퓨처스 올스타전에서 최우수선수(MVP)가 됐다. 고교 졸업 후 6년 만에 타자로 변신에 성공한 그는 역시 천재였다.

○ 채천재, 원조 천재를 만나다

채태인은 2008년 10홈런, 2009년 17홈런을 때리며 주전 1루수 자리를 굳혀갔다. 하지만 2010년 8월 수비 중 뒤로 넘어지면서 뇌진탕을 입어 또 한 번 선수 인생의 위기를 맞았다. 뇌진탕 후유증 등으로 2011년에는 타율이 0.220에 그쳤고, 지난해에는 일본에서 복귀한 이승엽에 밀리며 타율이 0.207까지 떨어졌다. 시즌 대부분을 2군에서 보낸 채태인은 “‘내 실력이 이것밖에 안 되나’ 하고 좌절도 많이 했다. 야구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말했다.

힘든 시기에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강기웅 2군 타격코치였다. 강 코치는 아마추어 한국화장품 시절 5연타석 홈런을 치며 ‘천재 타자’로 불렸다. 삼성 입단 첫해인 1996년에는 타율 0.322에 26도루를 기록하며 ‘오른손 장효조’란 평가를 들었다.

강 코치는 “태인이는 100의 힘만 써도 홈런을 칠 수 있는데 200을 치려고 한다”고 진단했다. 강 코치의 조언에 따라 채태인은 한 발을 들고 치던 타법을 노스텝으로 바꿨다. 강 코치는 “만약 이 자세로 안 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며 그를 독려했다.

‘원조 천재’의 도움을 받은 채태인은 올 시즌 ‘천재 모드’로 돌아왔다. 그는 “올해 타율 0.381을 쳤는데 내년에 다시 미끄러지면 또 이상한 소리를 듣지 않겠나. 잘될 때 더 노력해 좋은 이미지의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강 코치는 “태인이가 올해 야구에 눈을 떴다. 올겨울을 잘 보내 내년 시즌까지 이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앞으로 5년간은 쉽게 갈 수 있다. 한국 최고의 홈런 타자가 될 재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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