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즘에 억눌린 무대… 우린 ‘상상’을 가지고 놀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9일 03시 00분


코멘트

7년째 어린이극으로 우정 나누는 한국 ‘산너머 개똥아’ 원작연출 이윤택, 독일버전 ‘베를린 개똥이’ 연출가 알렉시스 부크

‘산 너머 개똥아’의 이윤택 연출(오른쪽)과 ‘베를린 개똥이’의 알렉시스 부크 연출. 두 사람은 “연극에는 국적이 없다. 언어는 힌트일 뿐이다. 느낌, 이미지, 소리, 리듬, 몸의 움직임, 공간 구성을 통해 언어에 앞선 연극적 소통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산 너머 개똥아’의 이윤택 연출(오른쪽)과 ‘베를린 개똥이’의 알렉시스 부크 연출. 두 사람은 “연극에는 국적이 없다. 언어는 힌트일 뿐이다. 느낌, 이미지, 소리, 리듬, 몸의 움직임, 공간 구성을 통해 언어에 앞선 연극적 소통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당신, 당장 한국으로 오시오!”

7년 전 독일 베를린의 소극장 발하우스 오스트. 연극 ‘귀신놀이’ 공연을 마치고 나온 연출가 알렉시스 부크(40)의 손을 붙든 반백의 한국인이 대뜸 말했다. 이윤택 연출(61)이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린가, 싶었다. 하하. 그 밤의 느닷없던 만남이 이렇게 긴 오고 감의 시작이 될 줄은 당연히 몰랐다.”(부크)

스펀지 인형을 앞세운 물체극 ‘베를린 개똥이’.
스펀지 인형을 앞세운 물체극 ‘베를린 개똥이’.

아기장수 설화를 재해석한 꼭두각시극 ‘산 너머 개똥아’.
아기장수 설화를 재해석한 꼭두각시극 ‘산 너머 개똥아’.
내년 1월 3일 개막하는 제10회 서울 아시테지 겨울축제는 이 연출의 ‘산 너머 개똥아’와 부크 연출의 ‘베를린 개똥이’를 같은 날 나란히 대학로예술극장 무대에 올린다. ‘산 너머…’는 아기장수 설화를 모티브 삼아 혼란한 세상에 출현해 악을 처단하는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어린이극이다. ‘베를린…’은 이 연출의 제안으로 독일 작가 마르쿠스 브라운(42)이 ‘산 너머…’를 개작해 2007년 밀양에서 초연한 뒤 베를린, 함부르크, 쾰른에서 독일 관객들에게 소개됐다. 통일된 독일의 혼란상을 다룬 내용으로 한국 배우들이 한국어로 공연하고 독일어 자막을 얹었다.

―독일어로 바꾸지 않은 까닭이 궁금하다.

“처음부터 그게 중요한 콘셉트였다. 독일의 현 시대 상황과 한국의 전통극이 어우러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번 한국 공연에서는 독일어 자막을 치운다.”(부크)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의 ‘낯설게 하기’ 게임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 땅에서 독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관객과 자연스러운 거리 두기가 발생한다. 한국 배우들이 베를린에서 독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그곳 관객이 느끼는 거리감과 비슷한 듯 다르다. 연극이 언어를 뛰어넘어 다양한 소통을 열어냄을 보여주는 게임이다.”(이)

―부크 연출의 작품에서 어떤 점을 발견하고 한국으로 초대한 건가.

“독일은 세계 실험극의 메카다. ‘귀신놀이’는 우연한 걸음에 본 거였다. 사람과 인형이 함께 노는 물체극이었는데, 정밀한 세련미를 갖췄으면서도 자유로웠다. 특히 소파 속을 채우는 스펀지 폐기물로 만든 인형이 인상적이었다.”(이)

―부크 씨는 2년 전 이 연출의 극단을 이끌고 ‘아르투로 우이의 출세’를 연출했다. 혹시, 독일 연극계 분위기에 대한 반감 때문에 해외 협력 작업에 눈을 돌리게 된 건가.

“‘베를린…’의 대사를 인용하겠다.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잘 정돈된 세상은 옛 세상의 빛을 잃게 만든다. 모든 헛소리들, 지겹다. 개인의 영혼이 악마처럼 정돈된 세상에 뒤덮였다….’ 독일 연극계에는 개별성이 없어졌다. 다들 어떤 경향에 몰두한다. 온통 심리적 리얼리즘뿐이다. ‘자연스러워라’ ‘진짜가 되라’ 요구한다. 동의할 수 없다.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자연스러워 보이려고, 진짜처럼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 너무 지루하다. 사람이 자연스러운 건 갓난아기 때뿐이다. 연극은 현실이 아니다. 현실을 어떻게 갖고 노느냐의 문제다. 한국 연극에서는 그런 시도들이 풍성하게 발견된다.”(부크)

―듣고 보니 무대 위에서 연극이 아닌 것처럼 자연스러워 보이려고 하는 게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독일 연극은 현실성의 포로가 됐다. 배우들이 평상복을 입고 무대에 올라가서 일상인 양 이야기한다. 그것만이 전위이고 좋은 연극이라고 보는 풍조…. 한국 대학로도 마찬가지다. 나는 내년부터 어린이극 위주로 활동할 작정이다. 안데르센 동화를 바탕으로 대본을 쓰고 있다. 열네 살 안데르센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펼치는 상상의 세계다. 내 연극도, 먹물 든 과거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연극은 결국 놀이인데 문학성과 사회성 등의 가치로 연극성을 억압했다. 어린이극에서는 거짓말을 못 한다. 어린이 관객은 지루한 걸 보여주면 바로 떠든다. 재미있으면 종일 꼼짝 않고 본다. 상상을 통한 연극성으로 많은 것을 이뤄낼 수 있는 통로다.”(이)

: : i : :

9∼12일. 1만5000∼2만원, 두 편 연속 관람 3만원. 02-763-1268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산 너머 개똥아#베를린 개똥이#이윤택#알렉시스 부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