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틀린 사실도 교과서라면 옳다”는 법원 판결은 틀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8일 03시 00분


오류 논란을 일으킨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세계지리 과목 8번 문제에 대해 법원이 “출제 오류가 아니다”라고 판결했다. 이 문제는 2012년이라고 쓰인 세계지도를 보여주고 유럽연합(EU) 회원국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회원국에 대한 옳은 설명을 고르라고 한 것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ㄷ. EU는 NAFTA보다 총생산액 규모가 크다’는 지문이 맞는다고 보고 해당 지문이 들어간 2번을 정답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2012년을 기준으로 할 때 NAFTA의 총생산량이 EU보다 더 많아 지문 ㄷ은 틀렸다.

재판부는 판결 이유에 대해 “만약 2012년을 기준으로 NAFTA 회원국의 총생산량이 EU보다 많다고 해서 이 지문을 틀리게 본다면 수험생으로선 교과서에 기재된 내용이 객관적 통계와 동일한지, 향후 어떻게 수치가 변경됐는지를 일일이 확인해 공부해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된다”며 “이는 고교 교육의 정상화를 저해할 우려가 있고 수능의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교과서에는 특정 연도를 밝히지 않고 EU의 총생산량이 NAFTA를 앞선다고 나온다.

교과서의 내용이 교과서에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옳은 것일 수는 없다. NAFTA의 총생산량이 EU를 앞선 것은 2010년부터다. 교과서 내용이 객관적 통계와 동일한지를 확인하는 부담을 학생들에게 돌려서는 안 되겠지만 출제자는 확인할 의무가 있다. 이 문제는 출제자의 지적(知的) 태만에서 생긴 출제 오류다. 시험 전 문제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통계의 정확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으나 무시됐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비교 기준은 누가 봐도 2012년이다. 재판부가 “해당 지문은 비교 시점에 따라 옳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을 뿐 명백히 틀리지 않는다”고 밝힌 것은 구차하게 들린다.

이번 판결이 내일부터 시작되는 대학 정시 모집에 앞서 입시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재판부의 선택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문제로 당락(當落)이 갈릴 수험생들을 누가 구제해 줄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수험생들이 이번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더라도 항소심 판결이 날 때쯤이면 이미 합격 여부가 가려져 실익이 없을 수도 있지만 진실을 가리는 차원에서 상급심을 기대해볼 만하다. 이 문제는 법원으로 넘어오기 전에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바로잡았어야 했다. 평가원에 대해 경종을 울리지 못한 법원의 판결이 아쉽다.
#교과서 오류#수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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