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소비와 욕망… 구석구석 서울 탐방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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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류신 지음/324쪽·1만8000원·민음사

독일의 문예비평가 발터 베냐민(1892∼1940)은 죽기 전 13년 동안 ‘아케이드 프로젝트’로 불리는 연구를 수행했다. 19세기에 지어진 파리 도심의 상가 모델인 아케이드를 산책하는 미시적 탐사를 통해 자본주의의 기원과 문화적 뿌리를 규명코자 한 연구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베냐민의 연구방법론을 지금의 서울에 적용한 것이다. 저자는 인천 출신으로 독일 현대시를 연구하고 문학비평가로 활약해왔다. 그는 우리 문학사 최초의 근대적인 산책가 구보 씨(박태원의 소설 ‘구보씨의 일일’ 주인공)를 21세기 서울이라는 공간으로 호출해 낯설게 본 이 도시의 풍경을 독자들에게 펼쳐 놓는다.

아침 일찍 영등포에 있는 집을 나서 63빌딩과 광화문광장, 청계천, 명동, 숭례문, 홍대입구, 삼성역, 강남역을 거쳐 막차 버스로 집으로 돌아가는 만 하루 동안의 여정 속에서 구보 씨의 눈에 비친 서울은 소비와 개발에의 욕망이 일상 구석구석까지 침투한 공간이다.

저자의 페르소나인 구보는 강남의 멀티플렉스 극장에서는 돈으로 환상을 사는 사람들의 욕망과 허탈함을, 홍익대 앞 카페에서는 경쟁사회에서 몸과 마음이 탈진한 청춘의 비애를 읽어낸다. 대형 수족관에 전시된 물고기에서는 생의 활력을 잃은 메마른 현대인과의 유사성을 발견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서울에 대한 냉소적 시선으로 일관하는 것은 아니다. 명동성당에서는 물질적 가치보다 정신적 가치를 중히 여기는 성소로서의 가능성을 읽고, 생뚱맞다고 비난 받는 청계광장의 팝아트 조형물에서는 광화문광장의 권위주의를 완화해 주는 존재 가치를 발굴한다. 저자가 본문의 적재적소에 인용한 소설과 시, 대중가요 구절들이 책 읽는 재미를 더한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서울#소비#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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