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화마속 母情, 두 자녀 껴안은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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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자녀 3명과 엄마 등 화목했던 일가족 4명의 목숨을 앗아간 부산 북구 화명동 아파트 화재 현장에서 합동감식반이 화재 원인을 밝히기 위해 12일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부산일보 제공
어린 자녀 3명과 엄마 등 화목했던 일가족 4명의 목숨을 앗아간 부산 북구 화명동 아파트 화재 현장에서 합동감식반이 화재 원인을 밝히기 위해 12일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부산일보 제공
처절했다. 어머니는 자식들을 살리기 위해 온 몸으로 불길을 막았지만 끝끝내 화마(火魔)를 이기지 못했다.

11일 오후 9시 35분 부산 북구 화명동 한 아파트 7층 5호실에서 ‘파파팍’ 소리와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평소 9시만 되면 자식들을 재운 홍모 씨(34)는 큰방에서 자고 있던 아들(8)과 딸(1), 작은방에서 자고 있던 큰딸(7)을 깨우기 위해 “불이야”라고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현관 쪽에서 불길이 번지는 바람에 큰딸을 챙기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홍 씨는 결국 아들과 작은딸을 품에 안고 불길 반대쪽인 큰방 앞 베란다 구석에 몸을 웅크렸다. 동시에 119에 직접 전화를 걸어 “집 현관 쪽에서 불이 났다. 불이 커서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아기가 있으니 빨리 와 달라”고 다급하게 신고했다. 수화기 너머로는 아이를 부르는 소리와 울음소리가 뒤섞여 흘러 나왔다.

불이 나기 불과 20분 전. 홍 씨는 야근을 위해 오후 6시 공장으로 출근한 남편 조모 씨(34)와 “아이들을 잘 재우고 있다”며 통화했다.

그런 홍 씨는 화재가 진압된 오후 10시 반경 시신으로 발견됐다. 작은방 입구 쪽에 머리를 둔 큰딸의 시신이 발견되고 12분 뒤였다. 홍 씨는 베란다 바깥쪽으로 몸을 웅크린 채 왼쪽 겨드랑이 안쪽 품에는 아들을, 오른쪽에는 한 살배기 딸을 품고 있었다. 두 아이는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며 숨져 있었다. 이들을 꼭 껴안은 엄마의 옷과 아들딸의 옷이 엉겨 붙어 시신을 분리하기조차 어려운 상태였다.

자식들을 보호하려던 홍 씨의 등 부분은 불길에 심하게 훼손돼 있었다. 홍 씨의 시신이 발견된 베란다 쪽은 알루미늄 새시가 녹아내릴 정도로 불길이 강했다.

졸지에 아내와 자녀들을 화마에 빼앗긴 조 씨는 12일 북구 금곡동의 한 요양병원 장례식장 빈소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훔치며 가족사진을 어루만졌다. 넋을 잃은 채 아들 딸 이름을 부르다 실신하기도 했다.

홍 씨 가족은 지난해 5월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뤄 80m²의 이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한 이웃 주민은 “동갑내기인 조 씨 부부는 작은 아파트에서 소박한 가정을 꾸리고 살면서도 주말이면 자주 가족나들이를 하는 등 단란하고 화목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이웃은 “남편은 성실했고 아이들은 인사성이 밝았다. 올해는 막내딸까지 태어나 경사가 겹쳤는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합동감식반은 12일 “1차 감식 결과 발화 원인은 거실 천장 전등의 누전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거실 천장의 형광등 4개가 들어가는 전등판에서 누전으로 불꽃이 튀었고 이 연소물이 바닥에 떨어져 불이 번진 것으로 보인다는 것.

불이 난 아파트는 1993년에 건축 허가를 받은 15층 건물로 당시 건축법상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건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비상대피 시 다용도실의 발코니 벽을 부수고 탈출할 수 있는 ‘경량칸막이’가 설치돼 있었다. 경량칸막이는 얇은 두께의 석고보드로 만든 벽으로 비상대피 시 조그만 충격을 줘도 쉽게 무너뜨릴 수 있는 시설. 경찰은 “홍 씨가 비상칸막이가 있는지 몰랐던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부산=조용휘 기자 silent@donga.com
#부산#화명동 아파트 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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