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연차휴가 잔혹사… 28%가 “오늘부터 쉬어도 다 못써”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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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시즌 소진 가슴앓이

국내 한 대기업의 이모 부장(43)은 지난달 말까지 연차 휴가로 총 7일을 썼다. 올해 쓸 수 있는 20일 가운데 절반이 넘는 13일이 남아 있다. 그는 올해 초만 해도 가족들에게 여름휴가를 해외로 다녀오자고 약속했다. 하지만 회사에 여러 일이 생겨 약속은 물거품이 됐다.

이 부장은 “직속 상사들이 모두 연차를 사용할 생각을 하지 않는데 나만 마음 편하게 쉴 수는 없다”며 “남은 연차를 올해 안에 다 쓰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털어놓았다.

연말을 맞아 남은 연차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는 직장인이 적지 않다. 연차는 12월 말일까지 다 쓰지 않았다고 해서 다음 해로 이월되지 않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근로자는 근무 첫해의 80% 이상을 출근하면 15일의 유급 휴가를 받을 수 있다. 이후 2년마다 1일씩 늘어 최대 25일까지 쓸 수 있다.

하지만 주어진 연차를 모두 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지난달 직장인 47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들은 올해 연차를 평균 5.93일 사용했다. 남아 있는 연차 일수가 10∼15일이라는 응답이 28.2%로 가장 많았다. 올해가 끝나기 전에 연차를 쓰지 못할 것 같다는 응답은 78.5%였다.

몇 년 전부터 국내 일부 대기업과 외국계 기업을 중심으로 연말에 연차를 모두 소진하도록 독려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기업이 대부분이다. 특히 인력난에 허덕이는 중소기업은 직원들의 휴가가 곧바로 생산 차질로 이어질 수 있고, 연초에 세운 실적을 달성하지 못한 기업들은 연말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한 해의 성과가 좌우되기 때문이다.

연차를 다 쓰지 못하는 직원들은 대개 연차수당으로 보상을 받는다. 그러나 일부에선 이마저 ‘그림의 떡’이라고 말한다. 대기업에 다니는 김모 과장은 “휴가계획서만 제출하고 실제로는 근무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일은 일대로 하고 연차수당은 사라져 일할 맛이 안 난다”고 말했다.

정부는 연차 사용을 독려하기 위해 법에 연차 사용 촉진 제도를 두고 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회사는 연차 휴가가 소멸되기 6개월 전에 근로자들에게 남은 연차 일수를 서면으로 알려주고 언제 쓸 것인지 확인해야 한다. 근로자가 연차 사용계획을 제출하지 않을 경우 연차 소멸 2개월 전에 한 번 더 서면으로 촉구해야 한다.

최우정 리더스노무법인 노무사는 “연말이면 연차 사용과 수당 지급 문제로 상담을 요청해오는 직장인이 많다”며 “회사에서 연차 사용 촉진을 위한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독일 등 유럽연합(EU) 국가들을 중심으로 도입이 늘고 있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도’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연차를 이월할 수 있게 허용하는 한편으로 휴일 등에 초과근무를 했을 때도 수당을 받지 않고 나중에 휴가로 대체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이렇게 되면 쓰지 못한 연차를 모아 안식월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도를 활용하면 일이 많을 때 근로자들이 쉬지 못한 시간을 모아뒀다가 일이 적을 때 몰아서 휴가를 쓸 수 있다”고 말했다.

박창규 기자 kyu@donga.com
#연차휴가#연말#근로시간 저축계좌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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