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경영 외면하면 세계가 외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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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회 새 규범 정착… 납품계약때 인식 부족한 한국기업들 비상

대우인터내셔널은 지난달 27일 태광실업에 부산 섬유공장을 팔았다. 공장 매각은 지난해 9월 국제 비정부기구(NGO)인 ‘코튼캠페인’이 대우인터내셔널의 우즈베키스탄 면 방직공장에 대해 “아동을 착취해 생산한 면화를 구매하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한 것이 계기가 됐다. 코튼캠페인은 대우인터내셔널뿐 아니라 부산공장에서 생산된 인조 피혁 제품을 납품받는 미국 나이키에 대해서도 불매 운동을 하겠다며 압박했다. 나이키가 5월 대우인터내셔널과 거래 중단을 통보하자 대우인터내셔널은 공장을 매각했다.

○ 인권, 기업 경영 화두로 떠올라

국내 기업들 사이에서 ‘인권경영’ 비상이 걸렸다. 국제 NGO들이 인권 문제를 내세워 기업을 압박하는 사례가 많아진 데다 국내 기업과 거래하는 글로벌 기업들도 인권 기준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기업들이 유엔 인권이사회가 2011년 발표한 ‘기업과 인권 이행 지침’ 등에 따라 인권경영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반면 한국 기업들은 아직 준비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일보가 지난해 매출액 기준 30대 기업 중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한 23개 기업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아동노동 금지’나 ‘강제노동 금지’ 같은 국내 노동법상 금지돼 있는 조항에 대해선 23개 기업 중 17개 기업이 성실히 준수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투자협약 시 인권보호조항의 포함 여부에 대해선 23개 기업 중 2개 기업만 포함하고 있다고 답했다. 주요 공급 업체 및 계약 업체에 대해 인권에 관한 심사를 하는지에 대한 항목에서도 4개 기업만 간단히 언급했을 뿐 나머지 19개 기업은 언급조차 없었다. ‘원주민 권리 침해 여부’에 대해서는 6곳만 ‘원주민 권리 침해를 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이상수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업의 인권 경영을 국제사회에서는 이미 지켜야 할 하나의 규범으로 합의돼 가고 있다”며 “한국 기업도 인권 문제를 글로벌 스탠더드로 인식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 해외 인권 기준에 맞춰 기업 정책 바꾸기도

LG전자는 올해 직원 징계 가운데 ‘감급(급여를 깎는 것)’을 없앴다. LG전자가 2010년 가입한 전자산업시민연대(EICC) 인권 가이드라인에서 ‘감급’을 인권 침해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EICC는 LG전자를 비롯해 IBM 등 주요 글로벌 전자업체들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 실현을 위해 만든 단체다. LG전자는 2010년부터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팀에서 인권 관련 리스크를 총괄하고 있다. 김민석 LG전자 CSR팀장은 “2009년부터 보다폰이나 HP 등 해외 주요 거래처에서 LG전자의 인권 정책에 대한 보고서를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LG전자가 해외 거래처로부터 “인권경영 관련 보고서를 제출해 달라”는 요구를 받은 건 2009년 6건에 불과했지만 2011년 41건, 2011년 49건에 이어 올해엔 11월 말까지 80건의 요구를 받았다. 김 부장은 “인권경영이 글로벌 스탠더드가 된 것을 보여 주는 예”라며 “한국 기업도 인권경영을 외면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 국가인권위, 내년에 ‘인권경영 가이드라인’ 발표

국내에서도 기업들의 인권경영을 촉진하기 위한 정책이 마련되고 있다. 인권위는 내년 초 유엔 인권이사회의 ‘기업과 인권 이행 지침’ 등 국제 기준을 바탕으로 ‘인권경영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발표할 예정이다. 38개 항목으로 이뤄진 가이드라인에는 ‘기업은 최고결정권자의 결정으로 인권경영 정책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선언해야 한다’, ‘기업 활동이 일어나는 지역 주민의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자회사 등 협력회사가 인권경영을 실천하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등이 담길 예정이다. 인권위는 인권경영 수준을 점검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각 기업에 배포하고 기업 인권 교육도 실시할 계획이다.

강주현 글로벌경쟁력강화포럼 대표는 “기업 최고경영자가 인권경영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고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박진우 기자 pjw@donga.com
#인권경영#대우인터내셔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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