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광염엔 목대… 임신엔 산부추… 불임치료엔 익모초…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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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5도의 전통 민간요법 민속학적으로 살펴보니

내륙과 떨어진 섬마을은 그들만의 독특한 민속 의료 문화가 계승됐다. 대청도는 기침이 나올 때 잘목나무(장구밥나무·①) 열매를 달여 먹었고 백령도는 안면신경이 마비되는 구안괘사에 하늘타리 열매(②)를 치료제로 썼다. 대청도와 백령도, 연평도 세 섬 모두 오줌소태엔 목대(목탁가오리③), 지혈에는 조뱅이(④)가 효험이 있다고 전해진다. 이인혜 씨 제공·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네이버 블로그
내륙과 떨어진 섬마을은 그들만의 독특한 민속 의료 문화가 계승됐다. 대청도는 기침이 나올 때 잘목나무(장구밥나무·①) 열매를 달여 먹었고 백령도는 안면신경이 마비되는 구안괘사에 하늘타리 열매(②)를 치료제로 썼다. 대청도와 백령도, 연평도 세 섬 모두 오줌소태엔 목대(목탁가오리③), 지혈에는 조뱅이(④)가 효험이 있다고 전해진다. 이인혜 씨 제공·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네이버 블로그
“흙을 달아 흙삼이냐, 돌을 달아 돌삼이냐, 바람 따라 들어오는 바람삼이냐. 인간이 몰라서 일을 저질러 삼이 섰으니, 떠오르는 일월성신(日月星辰)님 삼을 낫게 해 주시오.”

흔히 ‘눈에 삼이 섰다’고 말하는 삼은 눈에 희거나 붉은 좁쌀만 한 수포가 생기는 질환. 북한 포격의 상흔이 여전한 인천 옹진군 연평도는 이렇게 삼이 섰을 때 ‘당지기 할머니’를 찾아갔다고 한다. 여기서 당지기란 임경업 장군(1594∼1646)을 모시는 사당인 충민사(忠愍祠)를 돌보던 이를 일컫는다. 할머니는 새벽녘 환자가 해를 보고 서게 한 뒤 팥을 한 움큼 헝겊에 싸서 눈을 문지르며 이 가락을 흥얼거렸다. 그러고는 이 팥을 하나씩 물그릇에 떨어뜨리며 삼이 낫기를 빌었다.

민속학에서 ‘민속의료’는 흥미로운 주제다. 전통사회 구성원들이 이어온 예방 및 치료체계는 당대의 생활상을 잘 반영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현대의학도 놀랄 정도로 적확한 치료법이 있는가 하면 황당한 주술요법에도 그 시대의 사회적 함의가 담겨 있다.

최근 김형우 안양대 교수와 장장식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을 포함해 5명이 공동 연구해 발표한 ‘서해 5도 민속의료 현황과 지역적 특성’은 백령도 대청도 연평도에 전승된 민간의술을 통해 현지의 독특한 생활문화를 포착했다. 연평도의 삼 퇴치법도 얼핏 황당해 보이지만 햇빛의 정화작용과 팥의 소염작용을 이용하는 선인들의 지혜가 담겼다. 한때 연평도에 머물렀던 임경업 장군의 위엄을 빌려 마음의 안식을 주는 효과도 얻었다.

섬에서만 전해지는 민간요법은 이뿐이 아니었다. 방광염이나 요도염으로 오줌이 자주 마려운 오줌소태에는 ‘목대’라 부르는 목탁가오리를 최고로 쳤다. 옥수수수염을 약으로 썼던 내륙과 달리 바닷가다운 처방이다. 공동 연구자로 서울대 인류학과 박사를 수료한 이인혜 씨는 “‘동의보감’에도 소변보기 힘들 때 가오리가 좋다고 나오니 근거가 없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대청도는 목대를 고아 그 물을 마시되 여성은 숫목대, 남성은 암목대를 써야 제 효능을 발휘한다고 믿었다.

임신 출산과 관련된 민속의료는 섬에서 20세기 후반에도 이어졌다. 1960년에야 백령도에 첫 병원이 들어섰고 대청도와 연평도는 그 뒤로도 한동안 산파가 출산을 관장했다. 이 때문에 지금도 산후조리에 쑥을 달여 요강에 넣고 김을 쏘이거나 양초나무(산부추) 잎을 달여 먹이면 임신을 돕는다고 여긴다. 특히 세 섬은 불임치료에 육모초(익모초)가 탁월하다는 믿음이 큰데, 단오 이전에 채취해 말린 것을 달여서 마셨다.

재밌는 것은 섬 주민들의 종교적 성향이다. 국내 기독교계에선 충남 서천군 마량진을 ‘한국 최초의 성경 전래지’로 꼽는다. 1816년 영국 해군이 처음으로 성경을 전파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옹진군청 사료에 따르면 같은 해 영국 해군이 백령도에도 성경을 나눠줬다는 것. 1832년 영국 런던 선교회가 선교활동을 벌였던 곳도 백령도를 포함한 주위 섬들이었다.

이 때문인지 현재 백령도 연평도 대청도 주민의 80% 이상이 천주교나 개신교 신자다. 장 학예관은 “세 섬의 민속의료가 다른 섬들에 비해 굿과 같은 주술이 매우 미미한 것도 이런 시대상이 반영된 것”이라며 “일부 남은 미신적 색채도 예부터 내려오는 토속적 전통으로 받아들여 조화를 유지했다”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민간요법#민속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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