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고위간부에 100대기업 접촉 금지령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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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속… 낙마… 잇단 불미스러운 사고에 고강도 쇄신책 발표

“공적인 지위에 있는 사람일수록 사사로운 손님을 물리칠 줄 아는 병객(屛客)을 실천해야 한다.”

김덕중 국세청장이 29일 전국 세무관서장 회의에 참석해 “이 시간 이후 대기업 관계자와 사적으로 만나지 않겠다”며 간부들에게도 같은 자세를 요구했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이 쓴 ‘목민심서’에서 언급한 목민관의 자세 중 하나인 ‘병객’을 실천해 고위 간부의 부적절한 유착을 막겠다는 것이다.

김 청장은 이날 회의에 앞서 “국세청이 불미스러운 일로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하신 국민께 심려를 끼친 데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이어 이전환 차장이 고위 간부의 대기업 관계자와의 사적 만남을 금지하는 내용 등 5가지 쇄신방안을 발표했다.

쇄신방안에 따르면 국장급 이상 고위 간부는 매출액 기준 상위 100대 기업이나 지주회사 사주, 임원, 고문이나 세무대리인과의 식사 및 골프 등 부적절한 만남이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감찰반을 설치해 고위 간부를 대상으로 금품이나 향응을 받는 행위를 상시 감찰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국세청은 CJ그룹 세무조사 무마 의혹으로 전군표 전 청장과 허병익 전 차장이 구속되고 송광조 전 서울지방국세청장마저 부적절한 골프 접대 등을 받아 이달 초 사퇴하며 도덕성과 신뢰도가 추락했다. 불황으로 세수마저 줄어드는 상황에서 직원 동요를 최소화하고 조직을 신속하게 추스르기 위해 고위 간부에게 초점을 맞춘 강도 높은 쇄신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국세청 관계자는 “사무실 등 업무 관련 장소에서의 공식적 의사소통은 더욱 활성화하고, 동창회 등 사회통념상 이해될 수 있는 범위 내의 만남은 허용할 예정”이라며 “향후 성과를 보고 하위직까지 단계적으로 확대 시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세청은 비리와 유착 의혹을 낳은 세무조사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견제와 감독도 강화하기로 했다. 변호사 등 외부 인사가 과반수를 차지하고 위원장까지 맡는 ‘세무조사감독위원회’를 설치해 세무조사 운영 방향, 대상 선정, 집행 등을 심의한다.

매출액이 5000억 원을 넘는 대기업 1000곳의 세무조사에 대한 자체적인 사후 검증도 강화할 예정이다. 국세청의 중장기 개혁방안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국세행정개혁위원회를 운영하고 과세 정보 공유 등 ‘정부 3.0’ 사업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국세청 내부에서는 더 머뭇거리다가는 스스로 개혁할 기회를 잃고 개혁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크다. 김 청장도 “국세행정의 공정성과 효율성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전했다”면서도 “청렴에서는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며 조직 쇄신 의지를 다지고 있다. 27일 안대희 전 대법관을 초청해 청렴 교육을 여는 등 주기적으로 강연회와 워크숍을 열기로 한 것도 이 같은 노력의 일환이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청장 등 고위 간부 인사에 대한 정치권 외풍을 차단하고, 변호사 전문가 등 다양한 인재를 발탁하는 인사혁신의 근본 대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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