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희균]교육자를 누가 바보로 만드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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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 도둑놈이 따로 없다.”

평소 남달리 점잖던 노신사의 입에서 육두문자가 튀어나와 깜짝 놀랐다. 수화기 너머로도 울분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는 지역에서 알아주는 사립학교 법인의 임원. 자수성가한 이사장이 학교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기에 그도 학교 일이라면 지나치다 싶을 만큼 신중을 기했다. 그런 그에게 지난 정부가 고교를 다양화하겠다며 내놓은 자율형사립고라는 시스템은 일고의 가치도 없었다. 이름만 자율일 뿐 학생 선발, 교육과정, 교원 인사 무엇 하나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법정전입금 부담은 느는데 그간 나라에서 받던 재정결함보조금은 받을 수 없으니 이중으로 손해였다. 지역 경제가 죽어가는 마당에 등록금을 일반고의 3배씩 내고 학생이 몰려들 리도 없었다.

당시 정부가 조만간 일반고를 대상으로 자율형사립고 전환 신청을 받을 거라는 신문 기사를 보며 그는 혼잣말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누가 이런 걸 해, 바보가 아니고서야.’

그런 그가 바보가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전방위에서 압력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평소 알고 지내던 교육청 인사들은 담당 업무가 아닌데도 돌아가며 연락을 해왔다. 처음엔 의사를 타진하는 줄 알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노골적인 요구로 바뀌었다. 부교육감은 “교육부가 시도교육청 평가에서 자사고 추진 실적을 반영하니 도와 달라”고 했지만 도움을 구하는 이의 말투가 아니었다. 지역 사학인들 사이에서 누군가 총대를 메지 않으면 모두 말라죽겠다는 말이 나올 지경이 되자 고참급인 그는 버틸 수가 없었다.

울며 먹은 겨자는 역시 독했다. 교사들은 불만을 쏟아냈고, 첫 신입생 모집은 정원을 못 채웠다. 속사정도 모르고 귀족학교라고 욕하는 이들을 보면 울화가 치밀었다. 그래도 더 투자하고 더 부지런히 학생을 모으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불과 3년 만에 그는 일반고 붕괴의 주범으로 몰렸다. 교육부는 최근 일반고를 육성하기 위해 자사고 선발을 선지원 후추첨으로 바꾸겠다고 했다. 그는 “공교육 무너진 게 언제 적 일인데 그걸 신생 자사고에 뒤집어씌우느냐. 더럽고 치사하다”고 말했다. 교육자로 살아온 인생이 후회스럽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엔 울음이 섞인 듯했다.

정부는 27일 대입제도 발전방안을 발표하면서 대학 입시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변경을 최소화했다고 밝혔다. 학생과 학부모의 신뢰를 위해 급격한 변화를 피했다는 점을 누차 강조했다.

이는 대학뿐만 아니라 고교 입시에서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 자사고에 가고 싶다는 꿈을 키워온 학생과 학부모는 물론이고 정부 정책에 부응해 학교에 투자했던 자사고 운영자들의 신뢰도 짓밟아서는 안 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학교를 이리저리 뒤집으면 아무리 점잖은 교육자라도 정부에 육두문자를 쏟을 수밖에 없다. 원치 않는 정책에 휘둘려 돈도 명예도 잃었다면 더더욱 말이다.

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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