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檢에 “최태원 범행동기 바꿔 달라” 공소장 변경 요청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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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회장, 최재원 부회장 돕기 위해 펀드출자 지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횡령 사건을 심리 중인 재판부가 검찰에 “(최 회장의) 범행 동기를 바꿔 달라”며 공소장 변경을 요청했다.

27일 오후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판사 문용선)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재판부는 검찰 측에 “최 회장이 사건의 핵심 공소사실인 펀드 출자와 선지급 지시는 인정하고 있지만 범행 동기가 없어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며 “기존 공소사실로는 범행을 저지를 이유가 없는 상태가 될 수 있으니 기존 범행 동기와 경위를 변경할 수 있는지 검토해 보고 28일까지 공소장 변경 신청 여부를 통보해 달라”고 밝혔다.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최 회장과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 등은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을 통해 단기간에 투자수익을 얻고자 했고, 김 전 고문에게 보낼 옵션투자금과 기존 채무 유지에 들어가는 금융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 최 회장 측 변호인은 항소심 내내 “비록 펀드 출자와 선지급 지시는 했지만 자산이 충분하고 신용도 있는 최 회장이 무모하게 돈을 빼돌리는 범행을 저지를 이유가 없다”며 무죄를 주장해 왔다.

이날 재판부는 기존 공소사실을 ‘최재원 부회장이 2007년 말부터 김 전 고문의 투자 권유에 따라 500억 원 상당을 SK C&C 주식 담보 없이 만들 수 있는 방안을 김준홍 전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에게 마련하도록 하고 최 회장에게도 SK 계열사 자금이 조달될 수 있도록 요청했다’는 내용으로 수정할 것을 권고했다.

재판부 요청대로 공소장이 변경되면 범행 동기가, 최 회장이 사익을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에서 동생인 최 부회장의 투자금 마련을 돕기 위해 펀드 출자 및 선지급을 지시했다는 내용으로 바뀐다. 법조계 일각에선 이같이 변경되면 정상참작의 여지가 훨씬 커지고 형량도 가벼워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재판부는 이를 의식한 듯 이날 “범행 경위와 동기를 변경하는 것은 유무죄 판단과 양형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며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하고 모두가 승복할 수 있는 재판을 위해 공소장 변경을 요청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이날 예정에 없던 피고인 신문도 진행했다. 재판부는 최 회장으로부터 “선친이 작고한 뒤 최 부회장이 자신의 상속 지분을 포기해 마음의 빚이 있었다. 김 전 고문에게 돈을 보내 수익이 나면 동생에게 줄 수 있을 거란 생각도 있었다”는 진술을 이끌어냈다. 이 진술은 최 회장이 동생을 위해 이번 사건을 저질렀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재판부는 이날 “김원홍 전 고문을 증인으로 채택해 달라”는 최 회장 측 신청을 기각했다. 이로써 사건의 핵심 인물로 꼽혔던 김 전 고문의 법정 증언 없이 선고가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내일 당장 김 전 고문이 국내로 송환된다고 해도 증인으로 채택할 생각은 없다”며 “이미 법정에 증거로 제출된 김 전 고문의 녹음파일과 녹취록에 구체적으로 김 전 고문의 입장이 담겨 있어 별도 증언까지 필요 없다고 본다”고 기각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앞서 최 회장 측은 “김 전 고문이 체포돼 국내로 송환되는 건 100% 확실하고 김 전 고문이 직접 진술해야 범행과 관련된 직접 증거가 되는 만큼 증인 채택 여부를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재판부는 29일 오전 10시에 다음 공판을 열고 가급적 변론을 종결할 방침이다. 선고가 종전 예정대로 다음 달 13일에 있을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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