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백효 소장 “한자공부 소홀한 젊은 학자들, 비판 능해도 새기는 능력 부족”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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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논어연구 집대성 ‘부안설 논어집주’ 펴낸 한학자 성백효 해동경사연구소장

전통 한학을 익힌 마지막 세대의 책임감으로 60년 세월 익혀온 논어에 대한 해석을 녹인 책을 출간한 성백효 해동경사연구소장. 그의 호인 한송(寒松)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 인용된 논어 자한 편의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뒤늦게 시듦을 알 수 있다(歲寒然後知松栢之後彫也)’에서 따온 것이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전통 한학을 익힌 마지막 세대의 책임감으로 60년 세월 익혀온 논어에 대한 해석을 녹인 책을 출간한 성백효 해동경사연구소장. 그의 호인 한송(寒松)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 인용된 논어 자한 편의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뒤늦게 시듦을 알 수 있다(歲寒然後知松栢之後彫也)’에서 따온 것이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우리 시대의 마지막 한학자요? 저보다 앞서 돌아가신 선배 한학자 분들한테도 매번 그런 호칭을 붙여주던데 당치도 않습니다. 다만 최치원 이후 1000년 전통의 옛날식 한학 교육을 받은 마지막 세대 중 하나라고 할 순 있겠지요.”

1990년 주자의 ‘논어집주(論語集註)’를 사실상 국내에서 처음 번역했던 성백효 해동경사연구소장(68·한국고전번역원 명예교수)이 이를 토대로 60년 가까이 연구해온 논어 연구를 집대성한 책을 최근 펴냈다. ‘부안설(附按說) 논어집주’(한국인문고전연구소)다.

논어집주는 주자가 논어에 대한 각종 주석을 집대성하고 최종 해석을 펼친 책이다. 주자는 논어 말고도 대학 중용 맹자에 대한 주를 집대성해 사서집주(四書集註)를 펴냈는데 주자학의 나라였던 조선에선 이에 부합하느냐 아니냐가 정통과 이단을 가르는 기준이 됐다. 성 소장은 1990년 논어집주의 우리말 토를 달아 번역한 뒤 사서집주를 모두 번역했다.

이번에 낸 책은 23년 전 번역된 200여 쪽 분량의 논어집주에 다시 방대한 각주를 달고 성 소장 개인의 평가와 해석을 가미(附)해 833쪽 분량으로 펴낸 것이다. 그 백미는 주자뿐 아니라 조선시대 농암 김창협과 다산 정약용, 호산 박문호(壺山 朴文鎬), 그리고 중국 현대 최고의 주석가로 꼽히는 양보쥔(楊伯峻)의 해석까지 비교하면서 성 소장 자신의 생각을 풀어 쓴 안설(按說)에 있다.

“예전엔 주자의 해석 외의 다른 해석을 이단시하던 게 문제였다면 요즘은 오로지 다산의 해석만을 받드는 게 문제입니다. 다산이 박학다식한 천재임은 분명하지만 조선시대 대다수 학자가 따랐던 주자의 해석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도 폐해라는 생각에 다양한 설을 비교하면서 그중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골라봤습니다.”

예를 들어 학이(學而) 편 2장의 ‘其爲人也孝弟(悌)요 而好犯上者鮮矣니 不好犯上이요 而好作亂者 未之有也니라’(그 사람됨이 효도하고 공경하면서 윗사람을 범하기 좋아하는 자는 드무나, 윗사람을 범하기를 좋아하지 않고서 난을 일으키기 좋아하는 자는 있지 않다)에서 인(仁)과 효제(孝弟)를 동일시한 다산을 비판하고 이를 각각 내면의 본성과 외면의 실천으로 구별한 주자의 주석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위령공(衛靈公) 편 33장의 ‘君子는 不可小知而可大受也요 小人은 不可大受而可小知也니라’(군자는 작은 것으로 알 수는 없으나 큰 것을 받을 수 있고, 소인은 큰 것을 받을 수 없으나 작은 것으로 알 수 있다)에서는 주자를 비판하고 다산의 해석을 취했다. 주자는 ‘지(知)는 내가 아는 것이요, 수(受)는 상대방이 받은 것’이라고 지(知)와 수(受)의 차별에 초점을 뒀으나 다산은 ‘군자는 작은 것을 다 알 수는 없으나 큰 임무를 받을 수 있고, 소인은 큰 임무를 받을 수는 없으나 작은 것을 알 수 있다’로 풀었다.

또 자한(子罕) 편 16장의 ‘子在川上曰 逝者如斯夫인저 不舍晝夜로다’(공자께서 시냇가에 계시면서 말씀하셨다.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을 그치지 않도다)를 중국학자 양보쥔이 ‘세월이 빨리 지나가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을 한탄한 말씀에 불과하다’라고 했다. 성 소장은 이를 “새 것이 묵은 것을 씻겨내는 도체(道體)의 본질을 시냇물의 흐름에 비유했음을 읽어내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요즘 학자들은 확실히 비판엔 능하지만 한자 실력이 부족해 뜻을 바로 새기는 능력이 부족합니다. 또 성현의 말씀에 담긴 형이상학의 가르침을 너무 쉽게 간과합니다.”

해방둥이로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성 소장은 부친의 뜻으로 일반 학교를 다니지 않고 한학자인 부친과 여러 한학자 아래서 수학했다. 그가 논어를 처음 접한 나이가 열두 살이라고 하니 6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논어를 읽어온 셈이다.

그런 그에게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 뭐냐고 물었다. 태백(泰伯) 편 13장에 나오는 ‘독신호학(篤信好學)’을 꼽았다. “인생을 살면서 먼저 굳은 신념이 있어야 하고 그를 뒷받침하기 위해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는 뜻이지요.” 칠순이 다 된 이 한학자에게 그 신념은 전통 한학의 맥을 온전하게 전수하는 것 아니었을까.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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