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항상 지켜본다” 노숙인 변장하고 ‘운전중 전화’ 단속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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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 꺼! 반칙운전/6부]<2>캐나다 교통경찰의 ‘암행’

노숙인? 알고 보니 경찰! 캐나다 온타리오 주 교통경찰은 단속에 나설 때 ‘변장’과 ‘위장’을 불사한다. 위쪽 사진은 노숙인으로 변장한 오타와 시의 교통경찰이 지난해 4월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자를 단속하는 모습이다. 캐나다 CTV방송 장면을 캡처했다. 아래쪽 사진 속 토론토 시의 경찰은 올해 5월 일반 승용차로 위장한 경찰차를 타고 과속을 단속하고 있다. 토론토=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노숙인? 알고 보니 경찰! 캐나다 온타리오 주 교통경찰은 단속에 나설 때 ‘변장’과 ‘위장’을 불사한다. 위쪽 사진은 노숙인으로 변장한 오타와 시의 교통경찰이 지난해 4월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자를 단속하는 모습이다. 캐나다 CTV방송 장면을 캡처했다. 아래쪽 사진 속 토론토 시의 경찰은 올해 5월 일반 승용차로 위장한 경찰차를 타고 과속을 단속하고 있다. 토론토=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캐나다 온타리오 주 토론토 시 외곽 427번 고속도로. 시내로 나가는 출구 옆에 오른쪽 방향등을 켠 검은 승용차 한 대가 서 있었다. 멀리서 보면 우회전을 기다리는 일반 승용차처럼 보였다. 하지만 가까이 접근하자 차 색상과 비슷한 색상으로 ‘토론토 경찰(Toronto Police)’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교통경찰관이 경광등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은 반(半)위장 경찰차를 타고 과속 차량을 암행(暗行) 단속 중이었다.

○ ‘암행 경찰’에 엄지 세우는 시민들

동아일보 취재팀과 박지훈 서울연구원 교통시스템연구실 연구원은 5월 9일 오전 10시부터 2시간 동안 토론토 경찰청 교통지원과 찰스 스티비 경사(40)의 단속 현장에 동행했다. 고속도로 출구에 차를 세운 스티비 경사는 운전석 창문을 열고 시내 도로로 진입하는 차량들을 향해 스피드건을 겨눴다. 제한속도가 시속 90km에서 60km로 낮아지는 이 구간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는 차량이 있는지 단속하기 위해서다.

5분 정도 지나자 시속 72km로 달리는 승합차가 나타났다. 스티비 경사가 사이렌을 울리며 차량을 뒤쫓자 30대 백인 남성 운전자는 곧장 차를 갓길에 세웠다. 스티비 경사가 운전자에게 면허증을 요구하고 운전 기록을 확인해 범칙금을 부과하는 데 걸린 시간은 10여 분. 운전자는 깨끗이 잘못을 인정했다. 한국 단속 현장에서 흔히 벌어지는 실랑이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어 스티비 경사는 경찰차를 몰고 제한속도가 시속 60km인 시내 도로로 나섰다. 과속 및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을 단속하기 위해서다. 토론토 교통경찰은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법규 위반 차량을 단속하던 예전 방식에서 최근엔 실제 도로 위에서 반위장 경찰차가 일반 차량과 함께 달리며 단속하는 방식을 시행하고 있다. 특정 지점에서만 단속하는 게 아니라는 경각심을 지역 주민에게 주기 위해서다. 토론토 경찰청 교통지원과 롭 내퍼 경위(48)는 “‘경찰이 어디서든 지켜본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암행 단속의 가장 큰 효과”라고 말했다.

이날 과속 및 휴대전화 사용으로 적발된 운전자 5명 중 단속에 조금이라도 이의를 제기한 운전자는 1명뿐이었다. 이의를 제기한 운전자는 처음에는 “운전 중 휴대전화를 꺼낸 적이 없다”고 발뺌하다가 스티비 경사가 “당신을 5분가량 쫓아가며 다양한 각도로 휴대전화 사용을 확인했다”고 설명하자 잘못을 인정했다. 갓길에 ‘반칙운전자’를 세우고 단속하는 경찰에게 주변 운전자들은 가볍게 경적을 울리거나 창밖으로 팔을 내밀어 엄지손가락을 세우고 지나갔다. 경찰 단속을 격려한다는 뜻이었다.

○ “암행 1명이 일반 경찰 50명 효과”


온타리오 주에서 암행 단속을 하는 지역은 토론토 시만이 아니다. 자동차로 4시간 거리인 오타와 시의 교통경찰은 한술 더 떠 지난해 4월부터 비정기적으로 노숙인이나 공사 인부로 변장한 채 시내 주요 교차로에서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을 단속하고 있다. 북미 지역에서는 돈을 구걸하는 팻말을 들고 있는 노숙인을 도로에서 쉽게 볼 수 있는데 이처럼 위장한 것이다. 다만, 암행 경찰의 팻말을 자세히 보면 “한 푼 달라”는 말 대신에 “운전 중 휴대전화를 사용하면 벌금을 문다”고 쓰여 있다.

온타리오 주 경찰이 변장까지 불사하면서 암행 단속을 강화하는 이유는 ‘반칙 운전을 실질적으로 단속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엄격한 교통 법규라도 무용지물이 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온타리오 주는 2010년 2월 신호 위반에 따른 벌금을 200달러(약 21만 원)에서 최대 1000달러(약 105만 원)로 인상했다. 올해 말에는 주차 위반 범칙금을 현행 60달러(약 6만3000원)보다 배 이상 올릴 계획이다.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에 따른 벌금은 최대 2000달러(약 210만 원)로 한국의 35배 수준이다. 법규 위반에 심각한 불이익이 따른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 덕에 온타리오 주는 2010년 주행거리 10억 km당 사망자 수를 4.5명 수준으로 떨어뜨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네 번째로 적은 아일랜드와 같은 수준이다.

한국 경찰은 암행 단속이 운전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함정 단속’이라는 반발 때문에 2008년경 암행 단속을 잠정 중단했다. 이후 경찰은 신호 위반 및 꼬리 물기 단속 장소에는 표지판 등을 설치해 단속 사실을 알리고 있다. 과속 단속 카메라의 위치는 홈페이지에까지 고지한다. 하지만 이 같은 사전 고지 제도 시행 이후 ‘카메라 앞에서만 법규를 지키면 된다’는 잘못된 인식이 운전자 사이에서 자리 잡았고 단속 효과도 크게 줄었다는 지적이 많다.

온타리오 주 교통부는 “암행 경찰 1명이 일반 경찰 50명의 법규 위반 예방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밝혔다. 하이디 프랜시스 도로안전처장(51·여)은 “암행 단속은 범법을 유도하지 않기 때문에 ‘미끼 단속’이나 ‘함정 단속’과는 엄연히 다르다. 암행 및 변장 단속을 통해 교통사고 발생을 억제하는 정책을 계속 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토론토=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경찰#운전중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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