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건영통신원의 네버엔딩스토리] ‘미스터 옥토버’ 가 있어서 STL 가을은 붉게 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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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8월 21일 07시 00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카를로스 벨트란. 동아닷컴DB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카를로스 벨트란. 동아닷컴DB
■ PS 사나이 카를로스 벨트란

2004년 단일 시즌 PO 최다 8홈런…본즈와 타이
PS 34경기서 타율 0.363·홈런 14개·타점 25점
메이저리거 스위치히터 최초 300홈런·300도루

수비도 발군…2006∼2008년 외야 골드글러브
올스타 무려 8차례…은퇴 후 명예의 전당 예약


1970년대와 80년대를 풍미한 레지 잭슨은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5개나 차지해 ‘미스터 옥토버(10월)’라 불렸다. 정규시즌보다 유독 플레이오프에만 들어서면 신들린 사람처럼 방망이를 휘둘러 붙여진 닉네임이다.

지난 2004년 잭슨의 포스트시즌 활약을 연상시키는 ‘뉴 미스터 옥토버’가 탄생해 미 전역을 들끓게 만들었다. 주인공은 카를로스 벨트란. 당시 27세로 최고 전성기를 누리던 벨트란은 2002년 배리 본즈가 수립한 단일 시즌 플레이오프 최다홈런 기록(8)과 타이를 이뤘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서 각각 4개씩 홈런포를 터뜨린 것. 특히 홈런 2방을 터뜨린 디비전시리즈 5차전부터 챔피언십시리즈 4차전까지 5연속경기 대포를 쏘아 올리는 플레이오프 신기록을 수립했다. 또한 포스트시즌 12경기에서 타율 0.435, 타점 14개, 득점 21개, 볼넷 9개, 도루 6개를 기록하는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앨버트 푸홀스가 이끄는 카디널스와의 명승부 끝에 애스트로스가 3승4패로 무릎을 꿇어 벨트란의 월드시리즈 진출은 물거품이 됐다.

벨트란은 2년 후에는 뉴욕 메츠 소속으로, 그리고 지난해에는 세인트루이스 소속으로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았지만 역시 월드시리즈 진출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벨트란은 포스트시즌 34경기에 출전해 타율 0.363, 홈런 14개, 타점 25개, 득점 39개를 기록했다. 출루율과 장타율을 합친 OPS는 1.252로 100타수 이상을 기록한 선수 중 베이브 루스와 루 게릭을 제치고 당당히 1위에 이름을 올렸고, 11차례 도루를 시도해 100%% 성공시켰다.

어느덧 36세로 선수 생활의 황혼기에 돌입했지만 벨트란은 올 시즌에도 20일(한국시간) 현재 3할대 타율(0.304)을 유지하면서도 홈런을 21개나 때려 녹슬지 않는 기량을 과시하고 있다. 내셔널리그에서 가장 많은 월드시리즈 우승 경험을 지니고 있는 카디널스는 ‘플레이오프의 사나이’ 벨트란을 앞세워 통산 12번째 정상 정복을 노리고 있다.

● 스위치타자 최초 300-300클럽 만능선수

푸에르토리코 출신인 벨트란은 지난해 6월 16일 친정팀 캔자스시티 로열스전에서 2회 자신의 통산 300번째 도루를 성공시켰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스위치히터로는 최초로 300홈런-300도루 기록을 달성하는 기쁨을 맛본 것이다. 지금까지 300홈런-300도루 클럽에 가입한 선수는 배리 본즈, 윌리 메이스, 알렉스 로드리게스, 안드레 도슨까지 총 5명뿐이다.

가장 많은 홈런을 기록한 시즌은 뉴욕 메츠 소속이던 2006년으로 41개의 대포를 쏘아 올렸다. 14경기 출전에 그쳤던 1998년 데뷔 시즌과 부상으로 신음했던 2000년, 2010년을 제외하고 나머지 시즌에는 최소 15개 이상의 홈런포를 가동하는 꾸준함을 보였다. 2011년 9월 15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전에서 매트 레이토스(현 신시내티 레즈)를 상대로 솔로홈런 2방을 터뜨려 통산 300번째 홈런을 기록했다. 현재 메이저리그 개인통산 홈런은 355개를 기록 중이다.

캔자스시티 로열스에서 활약하다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이적한 2004년 벨트란은 42개의 도루를 성공시켜 자신의 한 시즌 최고 기록을 수립했다. 총 308개의 도루를 기록하는 동안 아웃된 것은 고작 48번에 불과하다. 무려 86.5%%의 경이적인 도루 성공률이다. 1406개로 메이저리그 최다도루 기록을 지닌 리키 헨더슨의 성공률은 80.7%%이며, 통산 100개 이상의 도루를 성공시킨 선수 중 벨트란보다 높은 성공률을 지닌 선수는 체이스 어틀리(88.9%%)와 제이슨 워스(86.7%%)뿐이다. 공격뿐만 아니라 수비에서도 벨트란은 뛰어난 실력을 지녔다. 고등학교 때 배구 선수를 병행해 남다르게 점프력이 뛰어난 벨트란은 빠른 발까지 지녀 최고의 외야수로 군림했다. 메츠 소속이던 2006년 기록을 보면 총 372번의 수비 기회에서 단 2개의 에러를 기록했고, 13개의 어시스트와 6개의 병살을 이끌어내 생애 첫 골드글러브에 입맞춤했다. 이후 2008년까지 내셔널리그 골드글러브 외야수 부문은 벨트란의 차지였다.

● ‘명예의 전당’ 도전하는 푸에르토리코 야구영웅

그의 첫 소속팀 로열스는 2005년 시즌을 앞두고 팀 리빌딩 작업을 선언했다. 이미 메이저리그 최고의 외야수로 자리매김한 벨트란을 붙잡을 여력이 없자 뉴욕에 연고를 둔 양키스와 메츠가 그를 잡기 위해 치열한 쟁탈전을 펼쳤다. 승자는 7년간 1억1900만 달러를 제시한 메츠였다. 이는 메츠 구단 역사상 최고 금액이었고, 벨트란은 메이저리그 통산 7번째로 연봉총액 1억 달러를 넘긴 선수가 됐다.

2004년과 2006년 플레이오프에서 입증된 해결사 능력에 매력을 느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2011년 7월 29일 트레이드를 통해 벨트란을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자이언츠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게 8경기차로 뒤져 지구 우승을 내줬고, 와일드카드도 카디널스에 밀려 플레이오프에서 벨트란의 맹활약을 기대했던 꿈이 무산됐다.

프리에이전트(FA)가 된 벨트란이 선택한 새 둥지는 카디널스였다. 2004년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서 대결을 펼쳤던 카디널스와 2년 2600만 달러의 조건에 합의한 것. 마이애미 말린스와의 2012년 시즌 개막전에서 벨트란은 말린스파크 개장 후 첫 번째 안타를 친 주인공이 됐다. 그해 6월 2일에는 메츠를 떠난 후 처음으로 시티필드에서 원정팀 선수로서 경기를 치렀다. 시티필드를 메운 팬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경기에 임한 벨트란은 메츠 선발투수 요한 산타나로부터 파울선상에 떨어지는 타구를 날렸지만 심판의 오심으로 파울볼이 됐다. 이 경기에서 산타나는 볼넷 5개만을 허용했을 뿐 삼진 8개를 곁들이며 자신의 생애 첫 노히트노런을 기록하는 기쁨을 맛봤다. 마치 운명의 장난처럼 벨트란의 타구가 페어볼로 선언되지 않은 바람에 나온 대기록이었다.

지금까지 벨트란은 무려 8차례나 올스타로 선정됐다.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한 선수로는 안드레 도슨, 듀크 스나이더, 짐 라이스, 치퍼 존스가 있다. 최근 은퇴한 존스를 제외하고 나머지 세 명의 선수는 모두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같은 푸에르토리코 출신으로 그의 어릴 적 우상인 로베르토 클레멘테처럼 벨트란도 은퇴 후 명예의 전당에 오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대부분 천주교를 믿는 다른 중남미 선수와는 달리 벨트란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300-300클럽에 가입한 후 자신의 저지에서 십자가 목걸이를 꺼내 보이며 모든 영광을 신께 돌렸다. 2010년 벨트란은 600만 달러를 들여 푸에르토리코와 플로리다에 야구 유망주들을 위한 ‘카를로스 벨트란 야구 아카데미’를 설립했다. 14세부터 18세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지도하는 이 아카데미는 오프시즌이면 현직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인스트럭터로 나서 ‘제 2의 벨트란’을 꿈꾸는 어린 선수들을 직접 가르치고 있다.


손건영 스포츠동아 미국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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