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 실패’ 벤처 1세대 3인이 후배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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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성공 뒤에 도사린 큰 실패를 경계하라”

누구보다 성실히 일했으나 결국 실패를 경험했던 ‘성실 실패’ 벤처 1세대들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후배 창업자들을 돕기 위해 뭉쳤다. 스타트업 멘토로 나선 강관식 조상문 김창규 씨(왼쪽부터)가 후배들의 성공을 기원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누구보다 성실히 일했으나 결국 실패를 경험했던 ‘성실 실패’ 벤처 1세대들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후배 창업자들을 돕기 위해 뭉쳤다. 스타트업 멘토로 나선 강관식 조상문 김창규 씨(왼쪽부터)가 후배들의 성공을 기원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한 번에 성공하는 벤처기업은 거의 없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한 벤처들도 평균 2.8회 실패를 겪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실패의 경험을 공유해 후배들이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하는 것은 벤처 강국과 그렇지 않은 국가를 가르는 한 요인이다.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회사를 접어야 했던 한국의 벤처 1세대들이 나선다. 이들은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이 다음 달 3일부터 진행하는 ‘벤처 1세대 멘토링 사업’을 통해 자신의 ‘성실 실패’ 경험을 전수한다.

멘토로 나서는 벤처 1세대 3명은 “내 실패 경험이 후배들의 성장에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다면…”이라며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다.

○ “기술만큼 중요한 것이 경영”

김창규 씨(62)는 1990년 그래픽카드(데이터를 영상신호로 바꿔 모니터로 보내는 장치)를 만드는 A사를 세웠다. 창업 초기 서울 용산전자상가 점유율 50%를 차지했다. 그래픽카드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디지털 셋톱박스로 갈아타 일본, 캐나다 등에 수출했다. 1997년부터 삼성전자에 TV용 컨트롤 보드를 납품했고 2000년엔 코스닥 시장에 입성하며 승승장구했다.

2003년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한 뒤 회사가 어려워졌다. 당시 회사 매출의 2배나 되는 금액이었다. 설비를 확장하고 원자재를 사려면 돈이 필요했다. 홍콩에서 신주인수권부사채(BW) 500만 달러(당시 약 57억 원)를 발행키로 했다. 그러나 시장에 “A사가 자금난을 겪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다.

급기야 주거래은행은 대출을 회수했고 A사는 2004년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김 씨는 “550명에 이르는 직원과 회사는 살려야 한다”며 지분을 포기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15년간 피땀으로 키운 회사는 공중분해됐다.

김 씨는 “자금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자금 관리에 능한 인재를 곁에 두지 못한 책임이 크다”며 “엔지니어가 대부분인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최고경영자(CEO)는 기술만큼 경영도 중요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기술에 대한 아집 경계해야”


강관식 씨(57)는 2001년 예산회계분석시스템을 공급하는 소프트웨어 업체 B사를 차렸다. B사는 2006년 삼성SDS와 컨소시엄을 꾸려 기획예산처(현 기획재정부)의 디지털 예산회계시스템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기술력을 인정받았으나 대기업 계열사들이 장악한 국내 시스템통합(SI) 시장에서 성공하긴 쉽지 않았다.

수출 시장으로 눈을 돌려 2009년 필리핀 정부의 예산회계시스템을 구축해주는 30억 원짜리 사업을 따냈다. 하지만 이듬해 치러지는 필리핀 대선으로 정치판이 뒤숭숭해지자 본계약이 지연되다 결국 취소됐다. 투자액 10억 원을 고스란히 날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내 공공조달 시장 상황도 위축됐다. 결국 2010년 급여를 연체했고 110명이던 직원은 그해 말 30∼40명으로 줄었다.

지나치게 시장을 앞서간 기술도 발목을 잡았다. B사는 2010년 23억 원을 투자해 스마트워크 시스템 ‘e워크랜드’를 내놓았다. 지금은 흔한 메신저나 화상회의 수요가 많지 않은 때였다. 강 씨는 “기술자들이 아집에 빠지면 패러다임이 바뀌는 순간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 “과욕 부리지 마라”


조상문 씨(49)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구미전자공고를 졸업한 뒤 대기업에 취직했지만 학력 차별을 느껴 10년 만에 퇴사했다. 1995년 기능 및 도로주행 코스 시스템을 만드는 C사를 세웠다. 제품은 경찰청 승인도 받았다.

당시 자동차 운전 전문학원 제도가 도입되면서 C사는 날개를 달았다. 이어 SK텔레콤의 100억 원 규모 무인기지국 원격 감시시스템 구축사업을 수주하고 KT에 중계기를 납품하면서 2000년 매출액은 360억 원까지 올랐다.

번 돈을 신사업 연구에 쏟아 부어 홈 네트워킹 시스템과 외부 통신망을 연결해 집에 있는 기기를 원격 조정할 수 있는 서비스, 위치기반 서비스 등을 개발했다. 그러나 관련 시장이 작았다. 재무구조가 나빠졌고 2004년에만 1차 부도를 세 차례 낸 끝에 2009년 파산 신청을 했다.

조 씨는 “경찰청과 대기업이 인정한 회사라는 자신감이 붙어 매출이 큰 프로젝트에만 매달려 과욕을 부린 게 화근이었다”며 “후배들에게 안정적인 경영을 하라고 충고하고 싶다”고 말했다.

강유현 기자 yhkang@donga.com
#벤처기업#실패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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